자동차보험 가입자가 교통사고로 차량을 수리하면서 부담한 '자기부담금'도 상대방의 과실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면 상대방 보험사에 직접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보험사가 상대 보험사로부터 관련 금액을 지급받았더라도, 피해자가 부담한 자기부담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박모씨가 H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박씨는 차량을 운전하던 중 다른 차량과 충돌해 자신의 차량이 일부 파손되는 사고를 당했다. 박씨는 자기차량손해 담보가 포함된 자동차보험에 가입해 있었고, 자신의 보험사는 수리비 270만원 가운데 자기부담금 50만원을 제외한 22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박씨의 보험사는 상대 차량 보험사인 H보험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해 수리비 중 상대방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이 실제 부담한 자기부담금은 보전받지 못했다며 자기부담금 가운데 상대방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H보험의 손을 들어줬다. 박씨가 자기부담금 약정이 포함된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사고로 발생한 자기부담금 역시 그 약정에 따라 스스로 부담하기로 한 비용인 만큼 별도로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험자가 보험자대위를 통해 취득하는 권리는 실제 피보험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범위에 한정된다고 판단했다.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은 자기부담금 부분까지 보험자대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고 소유 차량 보험자는 원고에게 지급한 보험금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부분에 관해서만 보험자대위를 할 수 있을 뿐, 원고에게 지급하지 않은 자기부담금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부분에 관해서는 보험자대위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 소유 차량 보험자가 피고에게 자기부담금 상당액을 청구할 권원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원고가 자신을 대신해 보험사에 이를 수령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볼 사정도 없다"며 "원고는 여전히 피고에게 자기부담금 상당액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보험의 '선처리 방식'으로 보험금이 지급된 경우에도 보험사가 실제 지급하지 않은 자기부담금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보험사 간의 실무적인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