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군데 찔린 신참 형사, 마지막 순간까지 범인 어깨 물어뜯었다[뉴스속오늘]

이소은 기자
2026.08.01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4년 8월 1일,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서 대한민국 경찰청의 강력반 형사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 출동해 범인을 검거하던 중 범인이 미리 준비한 흉기에 무참히 살해됐다.

세상을 등진 이들의 나이는 고작 32세, 27세. 슬하에 1남 1녀를 둔 가장과 미혼의 신참 경찰이었다.

현장 출동한 경찰들 흉기로 찌르고 도주

사건 당일 오후, 서울서부경찰서 강력 2반 소속 심재호 경사(당시 32세)와 이재현 순경(당시 27세), 정승화(당시 39세) 경장은 이학만(당시 35세)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섰다. 이학만은 은평구 응암동의 한 모텔에서 애인 이씨에게 흉기로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었다.

3명의 경찰은 오후 9시께 이학만과 이씨가 만나기로 한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카페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온 이학만이 이씨와 마주 앉은 순간, 심 경사는 이학민에게 다가가 경찰 신분증을 제시했다.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려던 찰나, 이학만은 돌연 흉기를 꺼내 심 경사의 심장과 옆구리를 찔렀다. 이학만은 이어 쓰러진 심 경사를 붙잡던 이 순경의 등을 여러 차례 찔렀다. 주위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됐다.

이 순경은 이학만의 다리 한쪽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어깨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또 카페 안 손님들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며 "이학만의 다리라도 잡아달라"고도 외쳤다. 하지만 칼을 든 범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학만은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한 후 이 순경을 아홉 군데나 칼로 찌르고 카페를 나왔다. 대로를 무단횡단한 이학만은 건너편에 세워뒀던 자신의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

심 경사와 이 순경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심 경사는 경력 10년에 부인과 세 살배기 아들, 돌이 채 안 된 딸을 둔 가장이었다. 이 순경은 미혼의 신참 경찰이었다. 정 경장은 도주로 차단을 위해 바깥에서 대기해 화를 면했다.

"국수 삶아줄게" 안심시키고 경찰 신고

다음 날 오전,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에서 이학만의 택시가 발견됐고 주변 공터에서는 이학만이 버리고 간 피 묻은 바지와 양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학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전국에 공개 수배령이 내려졌다. 현상금은 2000만원으로 책정됐으며 수배 전단 5만장이 배포됐다. 그래도 잡히지 않자, 6일에는 현상금이 5000만원으로 인상되기도 했다.

이학만은 구로구 구로동에서 기아 크레도스 흰색 승용차를 훔쳐 그 안에서 숨어지냈다. 그러다 연료가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8일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박씨 집에 침입했다. 그는 박씨와 박씨의 외손자(당시 4세)를 흉기로 위협하며 "내가 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침착하게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하며 "내 아들 같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 국수를 삶아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옷이 더러워진 이학만에게 셔츠와 칫솔을 주고 점심상도 차려줬다.

마음이 열린 이학만은 손자에게 1만3000원을 건네며 박씨에게 "나는 곧 죽을 테니 돈이 필요 없다.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이미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학만이 컴퓨터로 자기 기사를 찾아보고 있을 때, 박씨는 기지를 발휘했다. 안방에 들어가 진공청소기를 켜 놓은 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두 명을 죽인 사람이 지금 집에 와있다. 네가 신고해야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이날 오후 6시 42분께, 경찰 4명이 현장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이때 박씨는 외손자를 업고 화장실로 숨었다. 경찰이 온 것을 알게 된 이학만은 흉기로 배를 찌르며 자해를 시작했고, 진입한 경찰들이 그를 붙잡아 이대목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사형→무기징역 감형…경찰 처우 개선 첫걸음

병원으로 이송된 이학만의 어깨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흉터로 남아있었다. 이 형사가 칼에 무참히 찔리면서도 어깨를 물어뜯었을 때 난 상처였다. 동료 형사들은 이를 보고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목 놓아 울었다.

2024년 12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이학민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우발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할 뿐 아니라 정당한 이유 없이 공권력에 정면 도전한 만큼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음 해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는 "사전에 경찰관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고 이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어 아직은 교화의 필요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경찰관의 처우 개선 첫 거름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사건 이후 경찰관들을 위한 테이저 개발이 시작됐고 경량화된 보호복이 일선이 지급됐다. 또 위험 직무 수행 중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사망한 심 형사는 경사에서 경위로, 이 형사는 순경에서 경장으로 사후 1계급 추서되고 두 사람 모두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두 순직 경찰은 부여 무장 간첩 침투사건에 순직한 경찰들과 함께 '2024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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