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검사다]3억원 잃은 피해자 있지만…그날 난 일찍 퇴근했다

양윤우 기자, 정진솔 기자, 이혜수 기자
2026.08.06 17:58
[편집자주]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10월2일부터 형사사법제도가 크게 바뀐다. 수사와 기소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수사는 경찰과 중수청이 주로 맡고 기소는 공소청 검사가 담당하게 됐다. 지금과 다른 모습의 사법체제를 맞이하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어떤 경험을 할 지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해봤다. 가장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검사들의 일상도 1인칭으로 그려봤다.
/사진=ChatGPT 생성 이미지

나는 5년 차 검사다. 전날 밤 늦게까지 봤던 사건의 불기소 결정서에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라고 적었다. 유죄가 의심됐지만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끝내 확보되지 않아서였다.

사건은 피해액 3억여원의 투자 사기였다. 피해자는 피의자가 처음부터 사업할 생각도 없이 "점포를 확장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의자는 사업을 실제 추진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경영난으로 실패했을 뿐 피해자를 속일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었다. 피의자 회사는 투자금을 받기 전부터 임대료와 거래처 대금을 연체했고 법인계좌 잔액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투자금이 입금된 직후 상당액이 현금으로 빠져나간 흔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황만으로 부족했다. 투자금을 받을 당시 피의자가 회사의 재정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사업을 추진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경찰 기록엔 없었다. 투자금이 들어온 법인계좌 내역만 있을 뿐 이후 자금 흐름은 끊겼다. 회계담당자는 조사하지도 않았다. 피의자의 개인 채무와 투자금이 개인계좌로 빠져나갔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회계담당자를 직접 불러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더 확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피해자와 피의자를 면담할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나온 진술과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회계담당자를 조사하고 투자금의 흐름과 피의자의 당시 채무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약 한 달 뒤 사건이 돌아왔다. '회사가 어려웠다'는 원론적인 진술만 있었다. 언제부터 회사의 지급불능 가능성을 알았는지, 투자금의 실제 사용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술은 없었다.

이대로는 기소할 수도 종결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번엔 확인할 계좌와 조사할 질문까지 항목별로 더 세밀하게 적었다. 그사이 담당 수사관이 인사이동으로 바뀌었다. 새 수사관이 다시 결과를 보냈지만 현금으로 빠져나간 돈의 사용처를 밝혀내지 못했다. 회계담당자는 시간이 오래 지나 구체적인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해자는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만 제대로 조사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도 알고 싶었다. 보완수사 요구 횟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같은 요구를 되풀이한다고 사라진 자료가 돌아올 리 없었다. 결국 불기소를 택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경제범죄 수사로 이름을 알리다 최근 변호사로 개업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찜찜하다"는 호소에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보완수사를 두 번이나 요구했다며, 그럼 네가 할 일은 다 했어. 퇴근하고 이제부터 워라밸이라도 챙겨"라고 말했다.

'그래도 3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있는데…' 나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모니터만 바라봤다. 검사 초년생 시절 선배는 "기록에 빈칸을 남긴 채 사건을 끝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선배가 변한 것인지 검사의 일이 변한 것인지 헷갈렸다. 그날 나는 검사가 된 뒤 가장 일찍 퇴근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