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부터 경찰·소방의 현장 대응, 사고 데이터 공유까지 관련 제도의 전면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운전자가 중심이 되는 사고 책임을 운행사업자·자율주행차 제조사·안전관리자 등 각 주체로 나눠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종갑 한국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자율주행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책임의 중심이 운전자 개인에서 운행관리체계로 이동한다는 것"이라며 "운전자 중심의 현행법을 운행 중심의 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기술 승인을 받은 차량이라도 실제 운행 조건과 도로 환경 등에 따라 안전성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별도의 '운행 허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차 운행에 관여하는 사업자와 제조사, 안전관리자 등 각 주체의 역할과 의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사고 발생 시 이를 기준으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취지다.
김 이사는 "운행 허가는 사업자가 '해당 조건'에서 차량을 운행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제도"라며 "누가 어떤 권한과 의무를 가졌는지 사전에 명확히 하고 사고 시 책임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승인과 운행 허가, 현장 관리, 사고조사가 서로 단절되지 않도록 하나의 안전관리 체계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운전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거나 긴급상황을 방해할 경우 경찰과 소방이 현장에서 차량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영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율주행 서비스가 활성화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로봇택시가 구급차 진입을 막거나 경찰 수신호를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며 "경찰과 소방이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대로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가리기 위해선 자율주행차 운행 데이터에 대한 관계기관의 접근 권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주병권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부장은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련 데이터가 보험사에 공유돼 사고 책임자가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택희 소방청 구조과장도 "소방 당국도 차량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 원인을 조사한다"며 "자율주행차 화재 사고에서도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과 소방은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앞서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김용태 경찰청 교통안전과장은 "자율주행차 관련 로드맵을 수립하고 자율주행 법제도 TF를 운영하고 있다"며 "긴급상황 발생 시 현장 출동한 경찰과 소방이 자율주행차의 사업자·제조자 등과 즉시 소통할 수 있는 현장 긴급 대응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희 과장은 "자율주행차의 작동 에너지 기반은 전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소방에서는 전기차 화재에 대비해 관련 장비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터리 위치나 고전압 차단 지점 등 차량 내부 구조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면 현장 대응의 효과성을 높이고 대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한 입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운행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완전 자율주행차 책임 체계 정비 △운행 허가 제도 신설 △사고 발생 시 현장 조치와 데이터 접근 권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