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원룸 전담 관리인, 보증금 못 돌려줬다면 무조건 횡령죄일까

수십년 원룸 전담 관리인, 보증금 못 돌려줬다면 무조건 횡령죄일까

송민경 (변호사)기자
2026.09.25 09:30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사진=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사진=뉴시스

수십년간 건물을 사실상 전담해 관리하면서 보증금의 사용·지출에 상당한 재량을 행사해왔다면 건물 임대차보증금을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이나 건물 관리비 등에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횡령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석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석씨는 1996년부터 서울에서 19개의 방이 있는 원룸 건물을 관리했다. 처음엔 어머니의 위임을 받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받거나 돌려주는 업무 등을 맡았고 이후 어머니가 건물 지분을 자녀들에게 증여한 뒤에도 계속 건물 관리를 담당했다.

문제가 된 것은 임차인들에게 받은 보증금이었다. 석씨는 2018년 한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5000만원을 받은 뒤 계약이 끝났는데도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건물 지분을 가진 A씨가 임차인에게 5000만원을 대신 지급했지만 석씨는 A씨에게도 해당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또 다른 임차인에게서는 임대차계약을 여러 차례 변경하는 과정에서 보증금 4000만원을 받았다. 이후 계약이 끝나 A씨가 이 가운데 3000만원을 임차인에게 돌려주라고 요구했지만 석씨는 이를 반환하지 않았다.

1·2심 법원은 석씨에게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석씨가 받은 임대차보증금은 건물 소유자들을 위해 업무상 보관하던 돈이며 각 임차인이 낸 보증금은 계약이 끝나면 해당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등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된 자금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하는 데 사용했더라도 정해진 용도와 다르게 사용한 것이라 업무상횡령죄의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하고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석씨가 20년 넘게 건물을 관리하면서 임대차계약 체결부터 보증금 수령·반환, 건물 관리비 지출까지 사실상 전담해온 점을 고려했다. 석씨는 임차인이 퇴거할 때 특정 호실의 보증금을 따로 구분해 돌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좌에 있던 돈으로 보증금을 반환해왔고 건물 관리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지출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각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이 반드시 해당 임차인에게 그대로 반환돼야 하는 등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된 돈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석씨에게 건물 전체의 보증금 등 자금에 대해 구체적인 사용 목적과 사용처, 사용 시기를 정할 수 있는 상당한 재량이 사실상 부여돼 있었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석씨가 일부 보증금의 행방이나 사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이를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업무상횡령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석씨가 보증금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송민경 (변호사)기자

안녕하세요.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