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엔 다이소, 낮엔 떡볶이집, 저녁엔 디자인…'N잡' 뛰는 청년들

김서현 기자
2026.08.17 06:01

[오엠지]<13> 'N잡' 뛰는 2030

[편집자주] [편집자주] '요즘 애들'이라는 말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MZ세대의 '지금'은 어떨지, '오'늘의 '엠지'세대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실까요.
구자민씨(31)가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떡볶이 체인점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서현 기자.

새벽 5시50분 다이소, 오전 10시반 떡볶이 체인점, 저녁 6시 디자인 스튜디오.

구자민씨(31)의 하루 출근 시간표다. 최근 세종시의 한 떡볶이 체인점에서 만난 구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쉴 틈 없이 설거지와 재료 손질을 했다. 이날 오전 다이소에서 입고 업무를 마친 뒤 곧바로 두 번째 일터로 출근한 참이었다.

구씨는 현재 세종시에서 △다이소 계약직 입고 직원 △떡볶이 체인점 정규직 매니저 △프리랜서 디자이너 등 세 가지 일을 병행한다. 이른 새벽 다이소에 출근해 물건을 옮기고 진열한 뒤 떡볶이집으로 이동해 홀과 주방을 관리한다. 일을 마치면 다시 자신이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향한다.

하루를 여러 개의 일자리로 쪼개 일하는 것은 구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난과 고물가 속에서 생계를 위해 여러 일자리를 오가는 동시에 직장 밖에서 자신의 꿈을 좇는 2030세대 'N잡러'들이 늘고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자신의 '투잡'이나 '쓰리잡' 일상을 공유하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20대 여성은 돈가스집 아르바이트와 배달, 캐릭터 소품 사업을 병행하는 브이로그를 자신의 SNS에 올리고 있다. 영업직으로 일하면서 쇼핑몰 업무와 인라인스케이트 강습까지 하는 20대 남성의 브이로그도 인기다.

짧은 시간 단위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주당 취업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는 지난해 기준 174만2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른바 '쪼개기 알바'가 확산하면서 하나의 일자리만으로 충분한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여러 일자리를 병행하는 환경도 만들어지고 있다.

구자민씨(31)가 새벽 다이소 업무, 저녁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독자제공.

구씨 역시 처음부터 여러 직업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인 2019년 디자인 직무로 회사에 취업했지만 심한 번아웃을 겪으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다시 취업 준비에 나섰지만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에는 거부감을 느꼈다.

대신 오랫동안 꿈꿨던 자신의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친언니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리고 첫발을 내디뎠지만 곧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예정됐던 대형 프로젝트가 잇따라 중단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해졌다.

그러던 중 구직 사이트에서 다이소 입고 직원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마침 아버지가 떡볶이 체인점을 창업하면서 매니저 업무도 맡게 됐다. 그렇게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구씨의 일상이 됐다.

세 가지 일을 병행하는 삶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직장에 다닐 때와 비교해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닌 데다 여러 일을 오가다 보니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구씨는 '회사'에 구애받지 않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구씨는 "오히려 '내 시간'이 생겨 역설적으로 디자인 작업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청년들이 꼭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직장에 취업하지 않고 여러가지 단기 일자리를 얻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을 두고 취업난 심화와 늘어난 직업 선택지, 자아실현을 중요시하는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난에 쪼개기 알바 폭증이 겹치면서 청년들이 N잡을 좇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돼있다"며 "배달부터 AI 활용, 기술직 등 직업의 범주가 다양화되면서 일자리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도 요즘 취업시장의 복합적인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성세대와 달리 아무리 처우가 좋은 대기업이라 해도 자아실현이 선행돼야 하는 2030 세대의 특징도 N잡 열풍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