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원 상당의 유가 담합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유 4개사 직원 등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판사 류지미)는 20일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와 직원들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HD현대오일뱅크와 그 직원 김모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공소사실에는 정유업계의 구조적 비리나 담합이 만연한 것처럼 기재됐고 그것이 이란 전쟁때 정유가격이 오른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것으로 기재됐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검찰 조사과정이 짧았고 이례적으로 신속히 기소가 돼서 조사과정에서 충분히 사실관계를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SK에너지 측도 "전량구매 부분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검토된 부분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에쓰오일 측도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GS칼텍스 측도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재판 말미에는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김씨에 대한 보석심문이 진행됐다. 김씨는 지난 6월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김씨 측은 "김씨는 당시 '영업맨'이었을 뿐"이라며 "대부분 담합의 선례는 대표이사·본부장 등이 합의가 있을 때 처벌이 된 건데 영업 일선에서 주유소를 상대하던 김씨가 정보교환 담합을 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보석되도 오염되거나 인멸될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히 논의를 해야 왜 가격정보를 교환한 것이 담합이 아니라는 건지에 대해 방어 논리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척추 유압술을 받기 위한 일정을 잡으려고 하는 등 김씨의 건강이 좋지 못하고 김씨 노모는 아들이 구속된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4개 정유사와 그 직원들은 사전 협의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유류 및 석유제품의 가격을 임의로 올리거나 동결하는 등 담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이란 전쟁 등 중동발 위기를 이용해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의심한다. 4개 정유사의 직접 담합 규모는 약 14조2000억원, 경쟁제한 효과는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검찰은 4대 정유사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유소에 사실상 선택권 없이 전량구매 의무를 부과하고 다른 정유사 제품을 공급받은 주유소에는 손해배상 청구·비용 회수·보너스카드 중단 등 불이익을 줬다고 보고 있다.
일부 정유사는 휘발유 등 일일 판매가를 실제보다 낮춰 산업통상부에 허위 보고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 3월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S-OIL)·HD현대오일뱅크와 대한석유협회를 압수수색했다. 이후 관련자 수십명의 휴대전화를 추가 확보하는 등 강제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 수사 중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정보를 미리 알고 경쟁사 가격 정보가 담긴 자료 삭제를 지시한 정황이 발견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