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공이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조 대법원장이 요구에 따를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제청 요구를 받은 조 대법원장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다. 우선 제청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손 부장판사에 대한 기존 제청을 유지하는 방안이 있다. 헌법에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기 전에 대통령과 합의하거나 대면으로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만으로 이미 이뤄진 제청이 자동으로 철회되거나 효력을 잃는다는 규정도 없다.
법원 내부에서도 조 대법원장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워낙 소신이 뚜렷한 분이다.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면 인선을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최종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손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이를 스스로 거둬들이면 제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제청을 유지해야만 제청권을 지킬 수도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은 전례는 없다.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수용하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실상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권한으로 바뀔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후보자를 제청한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사실상 형해화되고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도 제청을 유지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조 대법원장은 내년 6월 만 70세 정년으로 퇴임한다. 남은 임기는 약 9개월이다. 조 대법원장이 손 부장판사 제청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치면 인선 문제는 사실상 차기 대법원장이 다시 판단하게 된다.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은 퇴임 전까지 자신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대법관을 제청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이 손 부장판사에 대한 제청을 거두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퇴임한 뒤로 해당 자리가 약 6개월째 비어 있는 데다 다음달 7일 이흥구 대법관도 퇴임하는 만큼 공석 장기화에 따른 재판 부담과 사법부 책임론을 고려할 수 있어서다.
재제청을 결정하더라도 절차가 간단하진 않다. 후보자를 다시 선정하는 절차를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해석이 엇갈려서다. 청와대는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4명 가운데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김민기·박순영·윤성식 후보 중 한 명을 다시 제청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후보자 천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법조인은 "추천위가 추천한 4명 중 한 명을 골라 제청한 순간 나머지 3명은 대법관 후보자 자격을 잃은 것으로 봐야 한다. 재제청 요구가 들어왔다고 나머지 3명의 자격을 다시 살려 그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하는 것은 제청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제청하려면 추천위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청와대가 선호하는 판사가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면 새 추천위의 심사 대상에 다시 포함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재제청 관련 해석을 넘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사이에서 누구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를 놓고 다툼이 발생했을 때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대통령에게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거부권이 있는지 등이 쟁점인데, 헌법이 명확한 답을 두지 않은 영역이어서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관련해 어떤 입장도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