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계속 증가해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지만 관련 예산은 거꾸로 감소하는 추세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치매안심센터를 비롯한 치매 관리 인프라 확대는 더디기만 하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치매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어 앞으로도 정책 추진·예산 투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열린재정 재정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 예산은 2022년 2076억7400만원에서 △2023년 1897억5300만원 △2024년 1919억8900만원 △2025년 1782억3500만원 △올해 1849억2800만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 관련 예산이 2019년 2363억5600만원까지 급증했지만 지금까지도 이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하락 추세를 보인다.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은 중앙치매센터(1개소), 치매상담콜센터(1개소), 광역치매센터(17개소)와 치매안심센터(257개소) 등 지역사회 치매 인프라 구축과 운영을 포괄한다. 특히 치매국가책임제에 발맞춰 대규모 정책 자금이 투입된 치매안심센터는 이용자 만족도 90% 이상을 기록하며 '전국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농어촌 등 지역사회 치매 노인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치매안심센터 예산은 2024년 1670억4700만원에서 지난해 1505억7700만원으로 165억원가량 감소하며 '역주행'하고 있다. 올해 예산은 1566억65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60억원 증가했지만 감소분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예산 축소 등으로 간호사·임상심리사와 같은 필수인력을 채용하지 못한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센터 이용률(등록 환자 대비 이용 환자 비율) 목표치도 2년 연속(2024~2025년) 81.2%로 제자리걸음 하다가 올해 84.5%로 찔끔 오르는 데 그쳤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신경과 교수는 "치매안심센터는 단순한 검진 기관이 아니라 진단 전후 상담과 등록, 사례관리, 가족 지원, 장기 요양 연계를 이어주는 '치매 관리 플랫폼'이다"라며 "통합돌봄이 치매 환자를 제대로 품으려면 센터 기능이 강화돼야 하는 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치매 정책이 기존 사업의 반복·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의 주요 정책 성과와 방향을 담은 '보건복지백서'에 '치매관리체계구축' 파트는 2024년과 2025년 내용이 '복사+붙여넣기'처럼 거의 똑같다. 2025년 백서의 해당 파트는 총 2670자인데 이 중 35자만 2024년 백서와 다른 내용이다. 또 치매 노인 추정치를 계산할 때 장래인구추계를 '오기'해 2040년과 2050년 전망이 똑같은 근거에도 1년 만에 3만명가량 달라지기도 했다.
정부에 따르면 치매나 장애 등으로 입원·입소 경계선상에 놓인 노인은 128만명(2024년 기준)에 달한다. 치매안심센터와 같은 지역사회 치매 인프라를 강화하면 환자는 살던 곳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고, 불필요한 입원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 누수도 막을 수 있다. 실제 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치매 역학조사 및 실태조사'를 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지역사회 거주 환자가 1734만원, 요양시설·병원 거주 환자는 3138만원으로 1400만원가량 차이가 났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치매 머니 관리'(재산관리지원서비스 시범사업 도입)만 제시됐을 뿐 치매 관련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복지부가 올해 초 향후 5년간 시행할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양적 확충'에서 '질적 도약'으로 치매 정책을 탈바꿈한다고 공언했지만 의료·돌봄 현장의 반응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최호진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기획이사)는 "정부 치매 정책이 후퇴하면 의료기관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도시나 농어촌 노인부터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치매 환자 수요 증가에 발맞춰 치매안심센터 등 인프라의 가치 평가도 사회적 비용 절감에 기반해 재수립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관 흩어진 '의료 데이터'부터 연계해야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4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치매 환자를 감당하려면 시설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와 요양·돌봄으로 나뉜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하고 중증 환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가 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2025년 9.09%에서 △2030년 9.22% △2040년 10.34% △2050년 11.81% 등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치매 유병률은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치매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2020년 9.17%였던 유병률은 지난해 소폭 낮아졌지만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다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 수도 계속 늘어나는 만큼 지금과 같은 인프라를 단순히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향후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통합돌봄'이다.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보건·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화된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통합돌봄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먼저 기관별로 흩어진 보건·의료 데이터를 연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치매 환자의 의료 데이터는 보건복지부가, 장기요양 데이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한다. 서로 다른 기관에서 데이터를 관리하다 보니 유기적인 정보 공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합 돌봄을 시행했지만 실제 거버넌스는 통합되지 않았다"며 "다른 기관들에 흩어진 데이터를 주도권 잡고 모을 거버넌스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실질적인 연계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의 통합과 실제 데이터 연동은 별개 문제"라고 덧붙였다.
증상이 심해진 치매 환자를 받아줄 전문 의료기관을 늘리는 것도 과제다. 정부는 2019년 치매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치매안심병원 제도를 시행했다. 가정이나 일반 요양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 행동심리증상(BPSD)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입원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 거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전국 25곳에 그친다.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려면 많은 인력과 관리가 필요하지만 추가 비용과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워 민간 의료기관이 더이상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국공립병원만으로는 질적·양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지낸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노동 강도가 높고 사고 위험도 크다"며 "감수하는 위험만큼 충분한 의료 수가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중증 치매 전담 시설을 만들기 꺼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환자의 상태와 가족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돌봄 서비스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돌봄 서비스의 질적·양적 향상을 위해서는 민간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가적 통제가 지나쳐 획일화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며 "노인들이 유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대신 돌봄 서비스에 지출하면 사회 환원에 따른 경제 순환과 유사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