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재제청 요구 못 응해"…강경 입장 배경은

오석진 기자, 이혜수 기자
2026.09.22 17:03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예상 외의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배경으로 법원 안팎에서는 제청권 침해를 막기 위한 결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제청 요구에 응할 경우 제청권이 사실상 형해화된다는 논리다.

조 대법원장은 22일 입장문을 내고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로는 지난달 28일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고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청와대 요구를 거부했다.

재제청 요청에 절차적인 흠결이 있고 내용적으로도 요청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청와대는 해당 문서에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등 흠결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 내에선 대법원장이 강경한 입장을 보인 건 제청권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막아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한 번 응하면 앞으로 청와대 뜻대로 모든 대법관을 임명하게 될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 입장은 결국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이어 "재제청 요구는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로 볼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도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대통령은 절차상 국회의 동의를 얻은 뒤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며 "만일 이때 청와대가 임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면 대법원장도 거부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법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과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관 임명 절차를 구체적으로 나누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대법원장 제청 △대통령의 국회 임명동의 요청 △국회 청문·표결 △대통령 임명 순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 역시 "대법관 임명절차는 삼권분립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한 조항"이라며 "한 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때 세 기관이 모두 협의를 해 권한을 행사하라는 취지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도 그런 점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록 조 대법원장 임기가 끝난 뒤겠지만 곧 대법관이 증원될 텐데 조 대법원장은 벌써부터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낼 수 있는 메시지는 '국회에 동의안을 보낼 수 없다' 정도로 간접적인 것이었어야 했다"며 "재제청요구라는 것은 제청 다음의 절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이번에 대법원이 청와대 요청대로 응한다면 향후 재제청 요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조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에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 갈등과 교착 상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관 공백 장기화에 따른 상고심 지연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앞으로 대법원과 정부가 많은 일을 공동으로 해 나가야 하는데 잘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또 대법원 구성이 부족하면 그만큼 인력이 부족하고 사건도 지연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면해 대법관 제청을 협의하는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조 대법원장이 부친상을 당하면서 구체적인 입장 발표가 미뤄졌다.

한편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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