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선택했어요. 시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국어학당.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온 유나씨(24)는 대형 화면에 떠 있는 '제32회 외국인 한글백일장' 글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백일장 글제는 '시- 길', '수필- 한글'이었다. 유나씨는 "시는 단어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아야 하는 데다 제가 감성적인 성격도 아니라 수필이 더 잘 맞을 것 같았다"며 "긴장된다"고 했다.
한글날 100주년을 이틀 앞두고 열린 이날 백일장에는 60여개국 출신 외국인과 재외동포 1200여명이 참가했다. 연세대 어학당 학생뿐 아니라 다른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글솜씨를 겨뤘다.
주어진 시간은 약 2시간. 글제가 공개되자 참가자들은 옆자리 친구와 무엇을 쓸지 이야기를 나눴다. 수정펜 등 필기구를 챙기지 못해 함께 온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10여분이 지나자 강당은 금세 조용해졌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지우개로 문장을 지우는가 하면, 아예 다음 장을 펼쳐 처음부터 다시 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 상당수는 한국어와의 첫 만남이 K팝과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한글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백일장에 도전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일본 사이타마현 출신 마이씨(29)는 "대학 친구가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팬이어서 한류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며 "한국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문장처럼 느껴지는 '밥 먹었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적 매디나양(19)은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 걱정되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공부할 때 주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준다"고 했다.
시험 시작 1시간쯤 지나자 작품을 완성한 참가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는 종료 직전까지 자리를 지키며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웠다.
글을 마친 참가자들은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적잖이 애를 먹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완성했다는 데 뿌듯함을 드러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한글날 100주년을 앞두고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이들도 있었다.
동국대 대학원생 아멜리아씨(25)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학과를 나왔고 시가 더 쉬운 주제라고 생각해 골랐는데, 막상 쓰다 보니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아지자씨(22)는 "아이디어는 정말 많은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어려웠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어 만족한다"며 "2년 전 한글날에도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이번에도 한글날을 앞두고 대회에 나 처음 한글을 배울 때의 마음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외래어와 줄임말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최근의 언어문화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아지자씨는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해 고향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다"며 "한국도 줄임말을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그러다 한글만의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이번 백일장 시상식은 오는 28일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열린다. 주최 측은 장원 1명을 포함해 총 68명을 선정하고 상장과 상금 등을 수여할 예정이다. 연세대는 1992년부터 외국인 한글백일장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개국에서 약 4만명의 외국인과 재외동포가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