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물 두 곳에 잇달아 불을 지른 70대 남성에 대해 경찰이 살인미수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피의자가 살해 의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과거 범행 전력과 피해자 진술, 방화 수법 등을 종합해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판단할 방침이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구속된 70대 이모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지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주 중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범행 동기와 피의자의 심리 상태 등을 살펴볼 예정"이라며 "추가로 확인된 피해자도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살해 의도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2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가는 과정에서 "죽이려던 게 아니라 겁만 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앞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만 적용했다. 이씨가 범행 전 "복수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정황과 특정 직원을 찾았다는 피해자 진술 등을 확보했지만, 살해 의도를 뒷받침할 증거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씨는 마중 나온 직원이 찾던 사람을 알아봐 주겠다고 하자 "필요 없다"고 답한 뒤 직원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불을 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살인미수 혐의 적용 여부는 이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데 달려 있다. 반드시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확정적인 의도가 없더라도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도 피의자의 진술뿐 아니라 범행 동기와 경위, 수법 등을 종합해 살인의 고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에서도 범행 정황을 토대로 살인미수 혐의가 추가됐다. 당시 검찰은 경찰이 적용한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에 살인미수 혐의를 더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겼다. 피의자가 휘발유가 뿌려진 바닥에서 승객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고도 불을 지른 점과 범행 장소가 지하터널 내 열차였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씨가 피해자들의 탈출을 어렵게 할 의도로 출입구에 불을 질렀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앞서 경찰과 소방당국의 합동감식에서는 이씨가 한양빌딩 4층 사무실 출입구 바닥에 인화성 액체를 뿌린 정황이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화재 당시 출입구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경찰은 이씨가 4년 전 같은 특허법인을 상대로 방화를 시도했던 전력과 범행 전후 행적, 추가 피해자 진술 등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물 두 곳에 7분 간격으로 불을 질러 19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해당 건물에 입주한 특허법인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