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경을 넘는 범죄, 국경을 잇는 사람들

이지연 법무부 국제형사과장
2026.10.30 06:10
이지연 법무부 국제형사과장 /사진제공=법무부

2026년 3월25일 마약사범 박왕열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송환됐다. 박왕열이 2016년 한국을 떠난 지 약 10년 만이었다. 그의 송환에 앞서 법무부 출장단이 필리핀을 찾았다.

박왕열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한 이른바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필리핀 당국이 그를 형기 종료 전에 한국에 인도하려면 필리핀에서 선고받은 형의 집행을 일시 중단해야 했다.

법무부 형사사법국장 등 출장단은 필리핀 법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 박왕열이 수감 중에도 휴대전화와 공범을 통해 국내에 마약을 유통한 특수한 정황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국 법무부는 마주 앉아 '임시인도'라는 해법을 이끌어냈다. 필리핀에서의 형 집행을 일시 중단하고 한국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하는 방안이었다.

범죄의 초국경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보이스피싱·마약·사이버도박·디지털 성범죄 등 주요 민생 침해 범죄가 국경 너머에서 우리 국민을 위협한다. 범죄자들은 신기술을 악용해 국경을 넘나들며 수사를 회피하지만, 국가기관의 권한은 여전히 자국의 영토와 법률에 제한된다. 초국가 범죄 대응을 위해 우리도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이유다.

범죄자를 국내로 데려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범죄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일이다. 국가 간에 합의된 정식 범죄인인도 및 형사사법공조 절차를 준수해야 사법주권을 존중하면서도 적법한 수사와 재판을 보장할 수 있다.

법무부는 범죄인인도와 형사사법공조의 중앙기관으로서 국내 관계기관과 외국 사법당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외국의 중앙 공조 기관과 공식 협력 절차를 주도하고, 국가 간 법률·제도·실무의 차이를 조율한다. 국내 수사·사법기관의 요청이 이행될 수 있도록 직접 면담·화상회의·전화 등으로 수시로 협의하고, 국제회의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개별 접촉을 통해 실무협의를 이어간다.

해외 도피 범죄인의 송환이라는 가시적인 결과 뒤에는 장기간에 걸친 끈질긴 국제공조가 있다. 범죄인인도의 경우 인도조약과 상대국의 법률 요건을 충족하고 범죄사실과 증거자료를 갖춰 상대국의 재판을 거쳐야 한다. 국가마다 범죄 구성요건, 공소시효, 인도 거절 사유가 달라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해외에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형사사법공조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법제와 실무 차이를 넘어 실질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담당자 간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복잡한 국제협력 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외국 사법당국과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소 신뢰를 쌓아둬야 긴급한 상황에서도 신속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번 박왕열 송환에서도 2015년 필리핀으로부터 '안양환전소 살인·필리핀 납치 사건'의 주범 김성곤을 임시인도 받으면서 축적한 실무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다.

초국가 범죄 대응에는 외국 사법당국과의 협력뿐 아니라 국내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도 필수적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말 출범한 초국가 범죄 특별 대응 TF에 참여하며 실감한 것도 기관 간 협력의 힘이다. 초국가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관계기관 간 정보 공유와 역할 분담을 강화하고, 주요 협력국과 상시 소통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각 기관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을 때 우리 정부의 입장도 외국 당국에 더욱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은 국내 대응뿐 아니라 국가 간 협력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끌어내느냐에 의해서 평가된다. 범죄가 발생하는 곳이 어디든, 그 시간이 언제든 국내 관계기관과 외국 사법당국을 잇는 협력의 고리는 단 한 순간도 끊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무부가 국경과 시차를 넘어 24시간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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