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일본 야구 대표팀이 예상치 못한 충격패를 당하며 고개를 숙였다. WBC 2연패 도전에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 열도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고, 패배의 책임을 묻는 날 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범인 찾기'의 서막이다.
이바타 히로카즈(51) 감독이 이끄는 일본 야구 대표팀은 15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6 WBC 8강전에서 베네수엘라에 5-8로 졌다. 0-1에서 1-1을 만든 일본은 5-2까지 달아났으나 재역전을 허용하며 무릎을 꿇었다.
이 패배로 일본은 대회 2연패가 무산됐고, 2006년 WBC에 창설된 뒤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역대 가장 낮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한 것이다.
가장 먼저 화살이 향한 곳은 사령탑인 이바타 감독을 향해서다. 경기 후 일본 내 SNS와 포털 사이트 댓글 창은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과 대타 기용에 대한 불만으로 도배됐다.
특히 리드 상황에서 올라온 구원 투수인 스미다 치히로(세이부 라이온스)와 이토 히로미(닛폰햄 파이터스)가 올라온 족족 실점이 나오자, 일본 현지 팬들은 "안일한 투수 운용으로 화를 불렀다"며 감독의 역량 부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소속 팀에서 1~2선발급 자원이지만 대표팀에서는 불펜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운드 붕괴만큼이나 뼈아픈 것은 타선의 집중력 부재였다. 특히 일본프로야구(NPB) 현역 최고의 타자이자 정교함의 대명사였던 곤도 켄스케(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부진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이번 시즌 NPB에서 타율 0.301(256타수 77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903일 정도로 뛰어난 타자인 곤도는 이번 대회 한정 8강전까지 13타수 무안타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표를 남겼다. 이날 경기 전까지 12타수 무안타였으나 5-8로 뒤진 9회 대타로 나서 루킹 삼진을 당하면서 13타수 무안타로 대회를 마감했다.
지난 1라운드부터 찬스 때마다 타석에 들어선 곤도였지만, 소프트뱅크에서 보여주던 특유의 선구안은 온데간데없었고 무기력한 범타로 물러나며 추격의 흐름을 끊었다. 패색 짙은 상황에서 나오자 팬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일본 팬들은 "리그 최고의 타자가 국제대회 결정적 순간에 이토록 침묵할 수 있느냐"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곤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가 팀 내에서 차지했던 비중만큼이나 많이 나오고 있다.
6회초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이토 히로미 역시 비난의 정점에 서 있다. 일본이 5-4로 앞선 박빙의 상황에서 등판한 이토는 베네수엘라 타선을 압도하지 못하고 흔들리더니, 결국 승부를 뒤집는 뼈아픈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피안타-피안타-피홈런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부진이었다.
실투 하나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일본의 4강행 티켓도 함께 날아갔다. 구속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토는 경기 종료 직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패배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일본 내 여론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소속팀 닛폰햄에서 보여준 에이스의 위용은 간데없고, 이번 대회 가장 뼈아픈 장면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팬들의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 열렸던 1라운드에서 일본은 전승을 거뒀지만, 한국과 대만처럼 유망한 20대 초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NPB 공인구 등 리그 전반에 대한 시스템 정비를 비롯해 이바타 감독의 지도력부터 베테랑들의 부진, 그리고 불펜 운용의 한계까지 노출한 일본 야구는 당분간 거센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