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68) 한화 이글스 감독은 KBO 리그에서 역대 3번째로 1000승을 달성한 명장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전승 신화를 일궈냈다.
선수들을 최대한 믿고 기회를 부여하며 기용하는 뚝심이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때로는 선수 1명을 향한 그 믿음이 그 선수는 물론, 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팀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이 너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한화는 14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와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홈 경기에서 5-6 역전패를 당했다.
한화는 3회 2점, 4회 2점, 6회 1점을 각각 올리며 6회말까지 5-0 리드를 잡았다. 7회초 1점을 내준 가운데, 맞이한 8회초. 삼성의 공격. 정우주의 뒤를 이어 마운드를 밟은 이상규가 선두타자 이성규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다. 그러자 한화 벤치는 바로 조동욱을 투입했다. 양우현을 삼진, 박승규를 유격수 뜬공으로 각각 잡아낸 뒤 김지찬에게 볼넷을 내준 조동욱.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최형우였다.
4점 차. 2사 1, 2루 상황. 여기서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클로저' 김서현이었다. 그러나 믿었던 김서현이 흔들렸다. 최형우에게 5구째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어 디아즈를 상대로 무려 10구 승부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좀처럼 체인지업의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5-2, 두 점 차. 삼성은 동점 주자인 1루 주자를 대주자 홍현빈으로 바꾸는 승부수를 띄웠다.
다음 타자는 류지혁. 여전히 제구는 말을 듣지 않았다. 김서현은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며 또 한 점을 헌납했다. 점수는 어느새 2점 차. 누가 봐도 김서현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반면 삼성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은 나이 관계없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기세를 더욱 드높였다. 투구 동작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삼성 벤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김서현이었다. 결국 후속 전병우 타석 때 초구 폭투를 던지면서 또 한 점을 내줬다. 어느새 점수는 5-4, 한 점 차까지 좁혀지고 말았다. 전병우는 유격수 앞 땅볼 아웃. 이닝 종료.
이어진 8회말 한화 타선이 추가 득점에 실패한 가운데, 맞이한 9회초 삼성의 마지막 공격. 이미 전 이닝에 크게 흔들렸던 투수를 바꿀 법도 했지만, 여전히 이번에도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김서현이었다. 8회까지 투구 수는 22개.
9회 김서현은 선두타자 박세혁에게 2구째 좌중간 안타를 내줬다. 후속 이성규의 희생번트로 무사 2루가 됐고, 대타 김재상이 들어섰다. 그런데 김서현의 공이 또 바깥쪽으로 날리고 말았다. 결과는 스트레이트 볼넷. 다음 타자 박승규 상대로 초구에 몸에 맞는 볼을 던지며 1사 만루 위기를 재차 스스로 초래했다. 여기서도 투수 교체는 없었다. 전진 수비를 펼친 가운데, 김지찬을 2루 땅볼로 유도한 김서현. 2아웃. 다음 타자는 최형우. 김서현의 투구 수도 늘어나면서 속구 구속이 최하 142km까지 떨어진 그였다. 결과는 7구째 밀어내기 볼넷. 5-5 동점.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교체는 없었고, 후속 이해승에게 또 밀어내기 볼넷을 헌납하며 5-6 역전을 허용한 뒤에야 황준서로 교체하고 말았다. 결국 한화는 9회말 클로저 김재윤을 올린 삼성에 5-6으로 패했다.
사실상 이미 밸런스는 물론, 정신적으로 크게 무너진 김서현을 그냥 마운드에 내버려 둔 거라 볼 수 있었다. 충분히 바꿔줄 수 있는 타이밍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화 벤치는 끝까지 방치했고 결국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한화는 다 이긴 경기를 내주면서, 1패 이상의 충격을 떠안았다. 김서현 1명을 살리면서 또 쓰고자 했지만, 자칫 팀적으로 후유증이 오래갈 수도 있다. 김서현이 계속 던지는 모습을 보며 심지어 한화 팬들은 "벌투 아니냐", "저 표정으로 계속 공을 던지는 게 불쌍하고 잔인하다"라는 등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내놓기도 했다. 한 야구인은 "선수를 향한 믿음과 신뢰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밀어붙이는 게 때로는 무책임한 회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투수 교체에 정답은 없고, 선수가 이겨내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에는 한화 팬들이 정말 큰 상처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