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시대를 앞서간 수비수" 동료들이 본 '선수 시절' 홍명보 ... 21세 막내 스위퍼부터 57세 감독까지 "7번째 월드컵 뛴다" [기획]

박재호 기자
2026.05.24 04:55
홍명보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21세의 막내 스위퍼로 처음 출전한 이후 선수로서 네 번, 코치와 사령탑으로 각각 한 번씩 월드컵을 경험했다. 그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골 넣는 수비수'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4강 신화의 캡틴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사령탑으로서 조별리그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실패를 맛봤으며, 이제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7번째 월드컵 무대에 도전한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수 시절. /AFPBBNews=뉴스1
홍명보 감독. /사진=뉴시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과 가장 깊고 질긴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 바로 홍명보(57)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1990년 스물한 살의 앳된 막내로 처음 월드컵 무대에 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선수로서 무려 네 번, 코치로서 한 번, 그리고 사령탑으로 한 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며 한국 축구의 영광과 시련을 직접 겪었다.

사령탑으로 이미 한 차례 월드컵의 쓴맛을 경험한 홍명보 감독이 이제 두 번째 도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어느덧 7번째 월드컵 무대에 나서는 그의 지난 30여 년간 '월드컵 연대기'를 되짚어봤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21세 혜성처럼 등장한 스위퍼

홍명보와 월드컵의 첫 만남은 1990년 이탈리아 대회였다. 당시 주전 스위퍼 조민국의 부상으로 인한 대안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대회 약 4개월 전인 1990년 2월 노르웨이와의 친선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이회택 감독의 총애 속에 이탈리아 월드컵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 E조에 편성돼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연달아 상대해야 했다. 비록 한국은 벨기에(0-2 패)와 스페인(1-3 패), 우루과이(0-1 패)에 내리 패하며 3전 전패(승점 0)로 24개국 중 2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아쉬운 결과 속에서도 홍명보는 친구 황선홍과 함께 '향후 10년 국가대표팀을 대표할 선수'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1994 미국 월드컵: 세계가 놀란 '골 넣는 수비수'... 고정운 "시대를 앞서간 영리한 선수"

1994 미국 월드컵은 홍명보라는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무대였다. 조별리그 1차전 스페인전에서 0-2로 끌려가던 중 추격하는 프리킥 골을 넣었다. 이어 황선홍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서정원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며 극적인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2차전 독일전에선 전반에 3골을 헌납하며 수비에서 흔들렸으나, 홍명보는 후반전 그림 같은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이 골은 대회 최장거리 골로 기록됐다. 이로써 그는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단일 대회 본선 멀티골 기록자가 됐다.

당시 대표팀에서 함께 발을 맞췄던 고정운 김포FC 감독은 당시 홍명보를 '시대를 앞서간 영리한 수비수'로 회상했다. 고정운 감독은 스타뉴스에 "당시 홍명보가 고참급은 아니었음에도 리더십이 있었고, 아주 영리하게 공을 차는 선수였다"며 "만약 홍명보가 지금 시대에 경기를 뛰었다면 후방 빌드업 등에서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이상윤(맨 왼쪽)과 홍명보(왼쪽 상단 세 번째)./AFPBBNews=뉴스1
1998 프랑스 월드컵: 이상윤 위원이 기억하는 홍명보 "지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한국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선 부진했다. 홍명보는 스리백의 중심으로 나섰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1-3으로 패하고, 네덜란드전에서 0-5 대패를 당하며 수비 부진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네덜란드전 완패 여파로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 중도 경질당하는 사상 초유의 내홍을 겪었다. 하지만 홍명보는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처절하고 끈질긴 수비를 펼치며 1-1 무승부에 일조했다.

당시 윙포워드로 활약했던 이상윤 해설위원은 친구 홍명보를 '카리스마와 영리함을 모두 갖춘 리더'로 기억했다. 그는 "당시 최고참 선배들이 따로 있었지만 홍명보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후배들을 잘 이끌었다. 동시에 동료들과도 두루 잘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스피드가 아주 빠른 선수는 아니었지만 워낙 지능적으로 수비를 하며 자신의 약점을 커버했다"면서 "특히 최후방 리베로 위치에서 측면을 향해 길게 뿌려주는 롱패스와 킥력이 워낙 훌륭해 나와도 호흡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홍명보. /AFPBBNews=뉴스1
홍명보. /AFPBBNews=뉴스1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캡틴, 브론즈볼의 영광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한동안 대표팀에서 배제되는 시련을 겪은 홍명보 감독은 결국 리더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주장 완장을 달고 2002 월드컵에 나섰다. 그리고 본선에서 홍명보는 최진철, 김태영과 함께 역대 최고의 스리백 라인을 구축했다.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과 8강 스페인전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16강 이탈리아전과 4강 독일전에서 각각 1실점만 내주는 등 세계적인 강호 4개국을 상대로 단 2실점만을 허용하는 철벽 수비력을 과시했다. 특히 스페인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승리를 확정 지은 장면은 여전히 한국 축구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비록 3·4위전 터키전에서 경기 시작 11초 만에 공을 뺏기며 최단 시간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으나,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유종의 미를 거뒀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뒤 환하게 웃는 홍명보. /AFPBBNews=뉴스1
2014 브라질 월드컵: 사령탑으로 맛본 쓰라린 실패

선수 시절 화려했던 월드컵 기억은 감독으로 나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차갑게 식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이끌며 큰 기대 속에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월드컵 본선의 벽은 높았다.

당시 한국은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함께 조별리그 H조에 편성됐다.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희망을 쏘아 올렸지만,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와 2차전에서 수비가 크게 흔들리며 2-4 참패를 당했다. 이어진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도 0-1로 패했다. 결국 홍명보는 짧은 준비 기간과 숱한 부담감 속 조별리그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브라질 월드컵은 그에게 감독으로서 뼈아픈 교훈을 남긴 시련의 무대였다.

이제 홍명보 감독은 북중미 월드컵을 향한 담금질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선수로서 맛본 최고의 월드컵 영광과 사령탑으로 겪은 뼈아픈 실패까지. 월드컵이 주는 극한의 압박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서사를 써 내려갈지 팬들의 이목이 쏠린다.

고정운 김포FC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최근 대표팀을 둘러싼 다소 부정적인 여론과 관련해 고정운 감독은 축구계 선배로서 진심 어린 당부를 남겼다. 그는 "여론에 대한 부분은 본인이 원해서 감독이 된 만큼 본인이 짊어질 몫"이라면서도 "지금 당장은 비방보단 선수들과 똘똘 뭉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대회가 끝나고 난 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고 팬들의 지지를 당부했다.

이상윤 위원도 대표팀을 향해 격려를 부탁했다. "현재 여론이 좋지 않고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홍명보 감독이 선수 시절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해냈던 것처럼 특유의 소통과 리더십을 발휘해 분위기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그간의 비판을 불식시키고 대한민국 축구의 위상을 다시 한번 높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하는 홍명보 감독이 지난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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