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집에서 노는 사람이었다고요."
문진희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30일 국회에서 진행된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자리에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조은희(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대한축구협회 제55대 회장 선거 기간 당시 문진희 위원장의 신분을 거듭 묻자, 문 위원장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를 향한 조은희 의원의 질문 배경엔, 지난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당시 '자격 없이' 정몽규 당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 선거 운동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돼 이날 출석한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 초반부터 문진희 위원장의 태도는 떳떳하거나 당당함을 넘어, '오만'에 더 가까웠다.
사실 불법 선거 운동은 근거 없는 의혹이 아니었다. KBS에 따르면 회장 선거 기간 당시 한 심판 평가관이 투표권을 가진 심판을 만났는데, 이 과정에서 심판 승급과 경기 배정 편의를 대가로 정몽규 후보 지지를 요구하는 매표 행위를 시도한 정황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 문진희 위원장이 동석해 정 후보 등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와 더불어 녹취까지 공개된 내용이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과 선거 사무원만 가능하다. 선거인단 명부 역시도 후보자와 선거운동원 이외엔 알 수 없다. 문진희 위원장은 당시 전국에서 단 15명만 선정된 심판 선거인단과 자리했다. 마치 15명의 심판 선거인단을 모두 만난 것처럼 해석할 수 있는 녹취도 공개됐다. 정몽규 회장의 당선을 위해, 자격 없이 선거 운동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설득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관련된 질문에 문진희 위원장은 떳떳한 듯 보였다. 그는 '선거인 명부를 불법 입수해서 선거 운동을 했냐'는 조은희 의원 질문에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단단히 대답하라' 요구에도 "단단히 말하고 있다"고 맞섰다. 선거인 명부 입수에 관한 질문에도 "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입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의원 질문을 끊고 답하는 모습도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선 결국 '태도'와 관련해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심판 배정과 평가 등 이른바 심판 카르텔과 관련된 김 의원 지적에 답을 하는 과정에 결국 "자세 똑바로 하라. 공손하게 답하라. 여기는 민의의 전당이다. 국민의 룰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 내내 이어졌던 태도의 연장선에서 문진희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김재원 의원을 향해 "위원님은 말하면서 저는 말하면 안 됩니까. 목소리는 다운시키셔라"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쪽에서도 비판 고성이 나오자, 한 국회의원을 "거기(국회의원)는 끼지 마시고 좀, 아침부터"라고 말했다. 결국 질의가 중단되고, 이재정 문체위원장이 개입하는 상황까지 됐다.
이재정 위원장은 "증인(문진희)의 태도와 관련해서는 몇 번 지적하고 싶었다"며 "여기는 증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러 오는 게 아니다. 신문의 취지와 목적에 따른 질의 방식은 위원님들이 결정한다고 말씀드렸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이 자리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오만'에 가까웠던 문진희 위원장의 태도가 수그러든 건, 정몽규 후보 당선을 위한 불법 선거 운동에 무게가 실릴 만한 증거들이 잇따라 제기됐을 때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심판 선거인단과 만남을 가진 적이 있는지'에 관한 사전 질문지와 답변을 공개했다. 당시 문진희 위원장은 "정몽규 후보자에 대한 선거지원 '목적으로만' 만난 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핵심은 '목적으로만'이라는 표현이었다. 문진희 위원장이 심판 선거인단을 만난 배경에, 정 후보의 선거 지원 목적이 '포함되긴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의 관련된 집중 추궁에 문진희 위원장은 자신이 써 제출한 답변을 두고 "잘못 쓰여진(쓰인) 것 같다"며 황당한 답변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후 문진희 위원장과 심판 평가관과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더욱 궁지로 내몰렸다. '나도 마찬가지고 위원장님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모셨던 사람인데'라는 심판 평가관 대화에 담긴 '우리가 모셨던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질문에 문진희 위원장은 그저 모르쇠로 일관했다. 공개적으로 질타까지 받을 정도였던 문진희 위원장의 태도는, 정작 결정적인 증거들 앞에서는 달라졌다.
어쨌든 이날 문진희 심판위원장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당시 정몽규 당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 선거 운동을 펼쳤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공교롭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에서 놀고 있었다"던 그가 정몽규 회장 당선 직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과정은 그래서 더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점점 짙어지는 의혹처럼, 심판위원장 부임이 투표권을 가진 심판들의 표가 정몽규 당시 후보에게 향할 수 있도록 도운 것에 대한 '대가'여도 심각한 문제다. 그게 아니라면 '집에서 놀고 있던' 그가 어떻게 국내 모든 축구 심판 업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는지, 그 절차와 과정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이다.
조은희 의원은 이용수 대한축구협회장 직무대행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 및 필요시 징계를 요구했고, 이용수 대행은 자체 조사를 약속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감사관 등을 통해 사실 경위를 명확하게 조사해서 불법적인 사실이 확인될 경우 법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 장관은 "제보센터에서 받은 내용 등을 토대로 감사를 준비 중"이라며 "말씀하신 부분도 포함해 감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