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을 것 같아요.", "정말 쓰러질 것 같아요."
지난달 경북 포항에서 열린 고교야구 전국대회 현장에서 마주한 선수들이 직접 털어놓은 말이다.
엄살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당시 포항의 낮 최고기온은 37℃까지 치솟았다. 그늘 하나 없는 인조잔디 위에서 선수들은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한 채 수 시간 동안 뛰고, 던지고, 공을 쫓았다. 오전 9시에 시작한 경기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다음 경기를 준비한 선수들은 오전 11시부터 대기한 뒤 오후 2시부터 다시 3시간 가까이 땡볕에서 뛰었다.
경기가 끝나자 학부모들은 지친 선수들에게 물과 바나나를 급히 건넸다. 그러나 대기 공간에는 강렬한 햇볕을 막아줄 지붕도, 더위를 식힐 냉방시설도 없었다. 포항야구장에는 라커룸이 있었지만 고교 선수들에게는 사실상 개방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의자조차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옷을 갈아입고 몸을 풀었다.
비슷한 시기 프로야구에서는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지역의 경기가 취소됐다. 사직야구장 그라운드 지열이 71℃까지 치솟고 선수들이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연 개시와 경기 취소를 포함한 대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아직 성장 중인 고교 선수들은 최고 37℃의 땡볕 아래서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경기를 이어갔다.
이 대회에 참가한 고교감독 A는 스타뉴스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미 라커룸이 있는데 선수들이 이용하지 못했다"라며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잠깐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더위를 식힌 뒤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을 하나의 '재난 위험'으로 인식한 규정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공개된 올해 고교야구 주말리그 및 전국대회 운영규정들을 살펴보면 미세먼지 등에 따른 경기 중단 관련 내용은 있었지만, 폭염이나 온열질환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은 없었다.
대회마다 형식과 내용도 대부분 비슷했다. KBSA의 기본 운영규정에 시상 기준이나 유니폼 착용 기준 등 세부적인 부분만 다를 뿐이었다. 체감온도가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경기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기준, 의무적으로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규정, 냉방 대기 공간 등은 명시돼 있지 않았다.
현장을 지켜본 KBO 구단 스카우트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한 스카우트 B는 "누가 실제로 쓰러져야 바뀐다. 너무 더워서 아이들도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낮 시간 경기는 정말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스카우트 C도 "특히 포항야구장은 인조잔디 구장이라 선수들의 체감온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더위 속에서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지면 부상 위험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폭염은 선수 안전뿐 아니라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고교 감독 D는 "평소 시속 150㎞를 던지는 선수들도 이런 날씨에서는 시속 140㎞ 초중반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져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회를 주관하는 KBSA도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더운 시간대를 피해 오전 9시와 11시 30분, 오후 5시 이후로 일정을 편성하고 있다.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한 경기가 한낮까지 이어지는 게 문제일 뿐이다.
지난해까진 30분씩, 1시간씩 오전 경기를 더 앞당겨봤다. 하지만 이 역시 선수들이 새벽부터 준비해야 해 반발이 있었다. 고교 감독 A는 "확실히 오전 8시 경기는 쉽지 않았다.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면 새벽 5시"라고 현실적인 부분을 지적하면서 "차라리 혹서기에는 7이닝 경기를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청소년 대표 경기도 7이닝 경기를 진행하는 데 안 될 건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전, 오후 2경기씩 해 대회 일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100개가 넘는 고교 팀이 치르기엔 이 역시 현실적으로 무리다. 대부분의 전국 대회가 각자 팀들이 직접 지방 체류비와 대관비를 마련해야 하는 만큼 학부모, 학생들의 부담이 커진다.
여름 대회를 아예 없애기도 어렵다. 전국대회는 대학 진학과 프로 지명을 위한 마지막 증명 무대다. 9월 프로 신인드래프트와 대학 수시모집 전까지 대회를 마쳐야 하는 일정도 얽혀 있다. 출전 기회를 줄이는 방식은 선수와 학부모가 원하기 어렵다. KBSA가 입시 일정 조정을 관련 부처에 건의하더라도 단독으로 바꿀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한계가 안전에 손을 놓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현장에서는 7~8월 대회를 7이닝제로 운영하고 경기 중간에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자는 제안이 나왔다. 고교 감독 E는 "7, 8월에는 7이닝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기 중간에 한 차례 충분히 쉬는 시간도 주어지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반면 이닝을 줄이면 투수들의 출전 기회가 감소할 수 있는 만큼 일부 전국대회를 10월과 11월로 분산하거나 권역별 리그를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고교 감독 D는 "차라리 전국대회 4개 중 2개 대회를 격년제로 열거나, 10월 말이나 11월에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 대회에는 1, 2학년들이 출전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대학 진학 과정에서는 2학년 성적과 3학년 전반기 성적을 활용해 수시전형을 진행하면 된다. 아니면 수시전형을 없애고 정시 중심으로 전환해 11월까지 대회를 이어가도 된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권역별 리그전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고교 감독 D는 "권역 별로 20개 팀씩 묶어 한 조에서 리그전을 진행하면 팀당 19경기까지 치를 수 있다. 전국대회를 줄이더라도 경기 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기존 라커룸을 개방하고, 이동식 냉방기와 얼음이 갖춰진 선수 대기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체감온도에 따른 경기 연기·취소 기준과 의무 휴식시간을 대회 규정에 넣는 것이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다.
당장 이달 7일부터 열릴 마지막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목동, 신월, 구의야구장 등 서울에서 열린다. 이 대회 역시 오전 9시, 오전 11시 30분, 오후 5시 경기가 편성됐다. 대회 개막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37℃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됐다. 포항에서 본 장면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KBSA만의 몫도 아니다. 경기장을 소유한 지방자치단체와 대회 주최사, 학교와 교육청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대회를 유치했다면 선수들이 안전하게 경기할 환경까지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도 개편에 시간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지금 있는 공간과 장비부터 아이들에게 내줘야 한다.
고교 선수들은 경기 기회를 달라고 했지, 쓰러질 때까지 뛰게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대회를 없애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야구할 기회를 지키면서도, 무사히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권리를 어른들이 보장하자는 것이다.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 날씨에 다 큰 성인 프로 선수들조차 어지럼증과 구토 등 어려움을 겪는 상황. 누군가 실제로 쓰러진 뒤에야 움직인다면 이미 너무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