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국에 꼭 오셨을 겁니다" 두 아들 아빠 된 힐리어드, 가슴에 남은 한마디 품고 KT 1위 확정한다 [인터뷰]

김동윤 기자
2026.09.08 09:01
KT 위즈의 샘 힐리어드는 올 시즌 KBO 리그에서 32홈런 104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둘째 아들을 얻은 그는 부진할 때마다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언을 가슴에 품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힐리어드는 한국 팬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팀의 정규시즌 1위 확정을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KT 외국인 타자 샘 힐리어드가 최근 광주 KIA전을 앞두고 스타뉴스와 만났다. /사진=김동윤 기자

"네가 이렇게 못하는 건 말이 안 돼. 네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기억해."

부진할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대신 자신감을 일깨웠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샘 힐리어드(32·KT 위즈)는 이제 그 말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다.

힐리어드는 올 시즌 KBO 리그 최고의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이다. 정규시즌 116경기 타율 0.295(457타수 135안타) 32홈런 104타점 86득점 7도루, 출루율 0.363 장타율 0.556 OPS(출루율+장타율) 0.919를 기록하며 외야수 골든글러브까지 바라보고 있다. 득점권 타율도 0.304에 달한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4월까지 타율 0.232에 머물며 낯선 리그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5월 타율 0.350, 6월 0.318, 7월 0.365로 빠르게 KBO 리그를 파악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첫 시즌을 보내던 힐리어드에게 야구보다 훨씬 큰일이 찾아왔다. 지난달 27일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힐리어드는 최근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축복이다. 아내와 나뿐 아니라 첫째 아들도 동생이 생긴 걸 굉장히 좋아한다"며 활짝 웃었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맞은 출산이라 걱정도 있었다. 힐리어드는 "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환경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너무 잘해주셨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로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정말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KT 샘 힐리어드.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손주를 만나기 위해 힐리어드의 어머니 타마라 씨도 한국을 찾았다. 미국에서도 아들의 경기를 즐겨 봤던 어머니는 KT 홈경기는 꼭 관전하며 낯선 한국 야구 문화까지 즐기고 있다. 힐리어드는 "미국에서는 가족끼리 왕래를 자주 했던 편이었는데 내가 외국에 나와 있다 보니 자주 못 봤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에 오셨는데 나뿐 아니라 며느리, 손주 보는 걸 너무 좋아하셨고, 내가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고 행복해하신다"고 웃었다.

그 모습에 힐리어드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버지 짐 힐리어드다. 정형외과·스포츠의학 의사였던 아버지 짐은 텍사스대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던 운동선수이기도 했다. 힐리어드가 콜로라도 로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던 시절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아들의 야구를 지켜봤다. 결국 힐리어드가 빅리그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직접 본 뒤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가족은 루게릭병 연구와 환자 및 가족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힐리어드는 "아버지는 원래 여행을 정말 좋아하지 않으셨다. 미국에 계실 때도 원정까지 자주 오시는 분은 아니었다"면서도 "그래도 지금 살아계셨다면 아들과 손주들을 만나고 내 경기를 보기 위해 한국에는 분명 오셨을 것 같다"고 애틋한 심정을 드러냈다.

MLB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샘 힐리어드(오른쪽)가 아버지 짐 힐리어드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앨버커키 아이소톱스 구단 공식 SNS 갈무리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조언 가운데 유독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살아생전 아버지 짐은 아들 힐리어드가 부진할 때마다 비속어가 섞인 꽤 거친 농담을 던졌다. 그는 "아버지는 '네가 이렇게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너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못할 리가 없다'고 하셨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들을 때는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스스로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도 좋은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항상 좋은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부진할 때도 그런 식으로 자신감을 심어주셨다"고 돌아봤다.

못한다고 질책한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아들에게 '너는 원래 좋은 선수'라는 사실을 계속 심어준 아버지만의 격려였다. 이제 그 말을 들려줄 대상이 둘이나 생겼다. 힐리어드는 "아이들이 나중에 운동선수가 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째 출산 직후 힐리어드는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복귀 첫 경기에서 오랫동안 99에 멈춰 있던 시즌 타점을 100개로 늘렸다. 하지만 힐리어드는 이를 흔히 말하는 '분유 버프'로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는 경기를 쉬면 타이밍을 다시 찾는 데 시간이 필요한 선수다. 몸이 회복된 건 좋지만 경기 감각은 떨어졌다"고 냉정하게 짚었다.

KT 외국인 타자 샘 힐리어드가 최근 광주 KIA전을 앞두고 스타뉴스와 만났다. /사진=김동윤 기자

지금도 매일 경기에 나가며 다시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보낸 2026년은 힐리어드에게 오래 기억될 한 해가 됐다. 처음으로 미국 밖으로 나간 리그에서 골든글러브를 다투는 타자가 됐고, 둘째 아들을 품에 안았다.

한국 KBO 리그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힐리어드는 "한국 팬들은 굉장히 친절하다. 선물도 많이 주시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경험이 거의 없었다"라며 "미국에서 내가 먹던 과자나 간식을 어떻게 구하셨는지 선물해주시고, 최근에는 내 이름과 첫째 아들 잭슨의 이름이 적힌 가방 네임태그를 주신 분이 있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정말 세심하고 배려 깊다고 느꼈고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에게 자신감을 물려받았던 아들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힐리어드는 부진할 때마다 아버지의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좋은 능력을 가졌는지 기억해"라는 말을 떠올린다. 언젠가 두 아들이 힘든 순간을 맞는다면 힐리어드 역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같은 마음을 전해줄 생각이다.

한층 더 커진 책임감으로 이제 KT의 정규시즌 1위를 향해 달려간다. 힐리어드는 "현재 순위가 어떤지보다 매 경기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 전체를 대표해서 하는 말이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다"라며 "우리에겐 좋은 투수진이 있고 야수들은 제 역할을 하면 된다. 매일 한 경기씩 이기려고 하면 우리가 결국 1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KT 샘 힐리어드가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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