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승우 기자] "정치적인 문제가 스포츠에 개입한다면 선수단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겠다."
이상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장이 일본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공교롭게도 이 발언이 나온 지 불과 약 2시간 뒤, 나고야에 도착한 한국 선수단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이동하지 못하도록 제지당했다.
두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공항 측은 자체 규정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선수촌 환영 행사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한 데 이어 입국 과정에서는 태극기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선수단과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은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나고야로 출국했다. 이상현 단장을 비롯한 대한체육회 본부 인원과 배드민턴, 여자 핸드볼, 가라테, 탁구, 비치발리볼 대표팀 등 총 122명이 포함됐다.
이상현 단장은 출국을 앞두고 도요토미 등장 논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 15일 나고야 긴조항에서는 선수촌으로 사용될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의 접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전국시대 인물로 분장한 무장대가 등장해 공연을 펼쳤다.
세 인물은 아이치현 일대에서 태어난 ‘나고야 삼걸’로 불리며 현지 관광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도요토미가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평화와 화합을 내건 종합 스포츠 대회에서 각국 선수들이 생활할 숙소의 환영 행사에 도요토미를 등장시킨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아이치·나고야의 지역 문화와 관광을 소개하기 위한 행사였다. 특정 역사적 인물을 지지하거나 어떠한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대회 조직위원회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이상현 단장은 "우리 선수단은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부분에 대해 분명한 뜻을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은 경계했다. 이상현 단장은 "우리 선수들과 선수단은 이러한 문제에 동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동안 준비한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며 대회에 임하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약 2시간 뒤, 나고야 주부국제공항에 도착한 선수단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선수단 선두에는 개회식 기수로 선정된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이 있었다. 신유빈은 깃대에 연결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이동하며 아시안게임을 향한 각오를 다졌다.
나고야에서는 같은 모습으로 입국장을 나설 수 없었다. 현지 공항 측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이동하는 것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선수단과 대한체육회 관계자들은 깃대를 제거하고 태극기만 들고 이동하겠다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공항 측은 자체 규정을 이유로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선수단은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지 못한 채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현지 재일동포들이 선수단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지만, 태극기와 함께하는 입국 장면은 연출되지 못했다.
공항 측의 조치가 이상현 단장의 발언이나 선수단의 공식 항의와 연결됐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다만 도요토미 등장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분명한 뜻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직후 태극기를 둘러싼 실랑이까지 벌어진 것은 선수단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수단은 나고야항 가든부두 후지광장에서 열린 소규모 입촌식에 참석한 뒤 종목별로 대형 크루즈선과 일반 호텔에 나뉘어 짐을 풀었다. 이후 메달 사냥을 위한 현지 적응 훈련에 돌입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41개 종목에 선수 792명과 임원 260명 등 총 1052명을 파견한다. 금메달 40~45개 이상을 획득해 종합 3위를 지키는 것이 목표다.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도요토미에 이어 태극기 문제까지 발생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경기장 안에서는 메달 경쟁을, 경기장 밖에서는 선수와 태극기를 지키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