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를 하나 치고, 정확한 송구로 이닝을 끝냈다. 마운드에서는 선발 투수의 6이닝 1실점 호투를 이끌었다. LG 트윈스 포수 이주헌(23)이 제한된 출전 기회 속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주헌은 1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전에 8번 타자 및 포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8회초 박동원(36)과 교체될 때까지 안방을 지키며 LG의 12-1 대승을 이끌었다.
공·수에서 모두 존재감을 보였다. 2회초 첫 타석에서는 1볼 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체인지업을 밀어쳐 우익선상 안타로 연결했다.
3회말에는 포수로서 장점을 보여줬다. 2사 후 사구로 출루한 최원준이 2루 도루를 시도하자 빠르고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 그대로 이닝을 끝냈다. 올 시즌 이주헌의 도루 저지율은 24.1%(29회 중 7회 저지). 300이닝 이상 소화한 리그 포수 중 7번째에 해당한다.
투수 리드에서도 안정감을 보였다. LG 선발 앤더스 톨허스트는 이주헌과 배터리를 이뤄 6이닝 5피안타(1피홈런) 1사구 7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시즌 16번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하며 시즌 12승(9패)째를 챙겼다.
최근 이주헌이 보여준 성장의 장면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흘 전인 지난 15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에서도 포수의 판단 하나로 1점 차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
LG가 3-2로 앞선 8회말 1사 1, 3루. 마운드에는 마무리 손주영(28), 타석에는 서호철이 있었다. 손주영이 서호철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주헌이 공을 잡자마자 3루로 던졌다. NC가 히트 앤드 런 작전을 펼치면서 베이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3루 주자 오태양을 구본혁(29)이 태그했다.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2개가 올라가며 이닝이 끝났다.
LG 벤치가 NC의 작전을 예상하고 준비했던 플레이였다. 그래도 실제 상황에서 이를 실행해야 하는 건 포수였다. 이주헌은 가장 긴박한 순간 주저하지 않았다. 더블 아웃을 합작한 구본혁은 "눈빛을 주긴 했는데 (이)주헌이도 받았다고 하더라. 헛스윙 삼진이 나오면 무조건 3루에 던지기로 했는데 밥 사길 정말 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창원에서 스타뉴스와 만난 손주영에게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손주영은 "나는 타자와 승부만 생각했다. 어떤 공을 던져서 땅볼이나 삼진을 잡을지만 생각하고 있었다"며 "(이)주헌이가 갑자기 3루로 던지길래 봤더니 주자가 태그되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9회에는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천재환과 김형준의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가 됐다. 안타 하나면 동점까지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손주영-이주헌 배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권희동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신재인을 3루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잡아냈다. LG는 3-2 승리를 지켰고 손주영은 시즌 28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손주영에게 이 경기는 자신의 세이브만큼이나 이주헌의 성장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손주영은 "(이)주헌이가 진짜 많이 성장한 경기가 아니었을까 싶다"며 "타이트한 위기를 두 번이나 겪었는데 잘 이겨냈다. 블로킹도 잘했고 3루 주자도 잡아줬다"고 칭찬했다.
둘의 호흡이 처음은 아니다. 손주영은 "(이)주헌이도 지난해 저랑 선발로 한 60~70이닝 가까이 한 적이 있어서 이제 나를 잘 안다. 지난해 해놓은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이번에는 알아서 잡기 쉽지 않은 포크볼, 커브 사인도 적극적으로 내더라"고 웃었다.
물론 베테랑 박동원과 호흡을 맞출 때와는 아직 차이가 있다. 손주영은 "(박)동원이 형이 뭘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3년째 하다 보니까 이제 안다"며 "동원이 형에게 볼 배합을 배운 게 많아서 사실 동원이 형과 하면 내가 좀 편하다"고 했다.
이주헌과는 아직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손주영은 그 차이를 '불안함'이 아닌 '낯섦'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주헌이는 지난해 많이 맞춰봤지만, 올해는 많이 안 했다. 불안하다기보다는 낯설고, 나한테 책임이 좀 더 있는 느낌"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손주영이 일방적으로 이주헌을 이끈 것도 아니다. 손주영은 9회 마지막 병살타를 떠올리며 "병살을 잡을 때 (이)주헌이가 낸 사인이 나와 일치했다"고 했다. 이어 "주헌이도 나와 하면서 '주영이 형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고, 이런 공을 던져야 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며 "그런 걸 생각하면 나도 도움이 많이 됐지만 주헌이가 제일 도움이 많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염경엽(58) LG 감독이 젊은 포수에게 강조하는 것도 결국 이런 경험이다. 포수는 그날 투수의 어떤 공이 좋은지, 타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경기 상황에서 어떤 승부를 해야 하는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염 감독의 지론이다.
이주헌은 아직 그 과정을 지나고 있다. 박동원이라는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어 출전 기회는 제한적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쌓고 있다. 올 시즌 이주헌은 18일까지 6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15(130타수 28안타), 4홈런 17타점 12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602를 기록했다.
하지만 포수의 성장은 타율이나 홈런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15일 창원에서는 1점 차 위기에서 공을 잡자마자 3루로 던지는 판단으로 상대의 추격을 끊었다. 사흘 뒤 수원에서는 정확한 송구로 도루를 저지했고 선발 투수의 6이닝 1실점 호투를 뒷받침했다.
한 번의 좋은 플레이가 아니라 비슷한 장면들이 조금씩 반복되고 있다. LG가 박동원의 뒤를 맡길 젊은 포수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주헌도 한 경기씩 답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