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잘 좀 해봐."
당구장 알바생에서 LPBA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수빈(27)은 NH농협카드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보미(28)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김보미에겐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 정수빈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정수빈은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7시즌 4차 투어 '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이미래(30·하이원리조트)를 세트스코어 4-2(11-1, 11-10, 10-11, 11-7, 8-11, 11-5)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정수빈은 친구의 당구장 알바 대타에 나서며 우연히 당구에 입문했다. 2021년 본격적으로 큐를 잡은 뒤 빠르게 성장했고 2022년 프로당구 무대에 발을 들였다. 지난 2월엔 첫 결승 무대에 나서 아쉽게 패한 뒤 "다음엔 꼭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두 번째 기회는 놓치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4년 1개월 6일, 1497일 걸린 우승이었다.
시상식 이후 마이크를 잡은 정수빈은 "저희 팀에 있는 (김)보미 언니보다 먼저 우승을 했다는 게 사실 믿기지 않는다. 언니 잘 좀 해봐"라며 "보미 언니가 다음 대회는 꼭 우승할 것이다.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김보미는 민망해하며 미소와 함께 얼굴을 가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보미는 LPBA 통산 랭킹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강호다. 우승 없이 누적 상금 1억원을 넘긴 유일한 선수로 상금 랭킹 15위 내 선수 중 우승이 없는 건 김보미와 한지은(14위) 둘뿐이다. 그만큼 꾸준한 성적을 거뒀다는 방증이다.
그게 김보미의 뼈아픈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 출범과 동시에 2019-2020시즌부터 원년 멤버로 활약한 김보미는 첫 시즌부터 4강 두 차례를 비롯해 꾸준한 성적을 이어갔다. 우승 문턱에서만 세 차례 미끄러졌고 4강엔 무려 15번이나 진출했다.
당구계에선 "언제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라며 입을 모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그 진가를 알고 있는 정수빈으로선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 것이다.
우승자 기자회견에 나선 정수빈은 "언니가 기분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한 이유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언니이고 동료인데 충분히 좋은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말을 해서 부담을 주고 싶었다.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이고 정수빈 또한 김보미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시상식을 모두 마친 뒤에도 둘은 팀 동료들과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눴다. 정수빈의 발언을 듣고도 김보미는 민망함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얼굴엔 불쾌한 기색보다는 미소가 가득했다.
둘 사이와는 별개로 김보미의 승부욕을 일깨울 수 있는 효과로 이어질 수는 있다. 정수빈의 돌발 발언이 계획대로 김보미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 시즌 5차 투어인 '지금 잘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은 오는 18일 개막한다. 그 결과를 곧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