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도중 합류하며 내뱉은 당찬 포부는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에이스 크리스 페덱(30)이 초인적인 투혼을 발휘하며 기어이 연고지인 대구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삼성은 8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12-1 대승을 거두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마침내 우승을 확정 지었다. 지난 2014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왕좌를 탈환하는 순간이었다.
페덱은 이번 가을야구 무대에서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웠다. 포스트시즌 내내 선발로 10일 동안 300구 가까운 공을 던진 것도 모자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불펜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헌신을 보여주며 팀의 우승을 직접 완성한 것이다.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페덱은 지난 10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PO) 1차전에 선발 등판해 94구를 던졌지만 4⅔이닝 5실점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우승 확정 직후 현장 기자들과 만난 페덱은 1차전 부진에 대해 "인생의 교훈과 같았다. 실패가 내 자신을 정의하게 두지 않으려 했다"며 "인생의 어떤 일이든 다시 일어나 고개를 들고 자신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심리적으로 힘들 때 정서적으로 지원해준 팀원들이 있었기에 시즌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1차전의 아쉬움을 각성의 계기로 삼은 페덱은 단 사흘만 쉬고 30일 PO 4차전에 나서 99구를 기록했다. 끝이 아니었다. 다시 나흘 휴식 후 지난 4일 열린 KS 2차전에 선발 등판해 102개의 공을 던지며 7이닝 1실점 역투를 펼쳤고, 연장 12회 3-2 승리의 발판을 놨다.
열흘 동안 세 번 선발 등판해 던진 공만 정확히 295구. 본인 커리어에서도 처음 겪는 극한의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페덱을 지탱한 것은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텍사스 출신인 그는 자신의 롤모델인 전설적인 '철완' 놀란 라이언을 언급하며 "라이언도 사흘 쉬고 선발 준비해서 나갔다. '그도 했는데, 왜 나는 안 되겠나'라는 생각이었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이런 '텍사스 투혼'은 대망의 KS 5차전에서 정점을 찍었다. 전날 4차전 승리 직후 페덱은 이미 5차전 불펜 등판을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어제 승리를 확정 지은 후, 오늘 리드하는 상황이 오면 등판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내가 먼저 감독님께 말씀드리려 했다"며 "그런데 분석팀과 코치님들이 나보다 먼저 '내일 필요하다면 불펜에 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연하다(Absolutely)'라고 답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선발의 피로도가 채 가시기도 전에 6회초 불펜으로 등판한 페덱은 5이닝을 던진 원태인 이후 남은 4이닝을 홀로 온전히 책임졌다. 당초 예상보다 긴 이닝이었다. 페덱은 "처음부터 4이닝을 던질 것이라 듣지는 못했다. 완벽한 상황이라면 (원)태인이 6이닝을 던지고 내가 남은 3이닝을 던지는 것으로 생각했다"면서도 "5회 이후 10점 차이로 크게 앞서면서 일찍 마운드에 올라가게 됐다.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 내가 올라가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을 벤치도 알고 계셨다. 투구 수를 적게 유지한 덕분에 4이닝까지 소화하며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고 직접 설명했다.
마운드 위 페덱은 마침내 삼성에 우승을 선물했다. 올여름 합류 당시 뱉은 약속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스스로 완성해 냈다. 마지막으로 페덱은 "시즌이 끝나고 텍사스로 돌아가면 시차 적응을 좀 겪겠지만, 지난 4개월 동안 우정을 쌓은 팀원들과 샴페인을 터뜨리는 지금은 기분이 최고"라며 "무엇보다 지난 7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팬분들께 우승을 안겨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직접 지킬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감격의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