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운용제도가 바뀌면서 1조2000억원 규모의 퇴직연금용 채권혼합형 펀드가 해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퇴직연금 운용 규정이 기존의 상품별(주식형펀드, 채권 등) 분류에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나누는 이분법으로 바뀌면서 채권 60%, 주식 40%를 담는 채권혼합형 펀드의 위치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당장 오는 5월1일부터 시행되는데 금융당국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펀드IR 기사 자세히보기
24일 고용노동부와 금융당국은 오는 5월1일부터 퇴직연금 DC(확정기여)형 및 IRP(개인퇴직연금) 계좌의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기존 40%에서 70%로 상향조정한다고 밝혔다. 저금리 기조에서도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운용의 범위를 넓혀준 것이다. 관련 내용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겼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개별 위험자산별 투자한도도 폐지했다. 지금까지는 주식형펀드 40%, 외국채권 30% 식으로 자산군별로 운용 한도가 설정돼 있었는데 앞으로는 위험자산을 모두 포함해 70%로 제한한 것이다.
문제는 '위험자산'에 대한 정의다. 개정안에서는 안전자산을 제외한 모든 투자자산을 위험자산으로 분류한다. 안전자산은 '예·적금 등 원리금 지급이 보장되는 계약 외 투자위험이 낮은 운용방법으로서 금융위원회가 고시하는 운용방법'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 경우 채권에 60%, 주식에 40%를 투자하는 채권혼합형 펀드는 안전자산으로 봐야 할지, 위험자산으로 봐야할 지 문제가 생긴다. 기존 DC, IRP에서는 주식형펀드 비중만 40%로 제한하면 됐기 때문에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주로 채권혼합형펀드 가입을 권했다. 2014년 말 현재 실적배당형 DC, IRP(개인형)를 통해 채권혼합형펀드에 적립된 자금은 1조2153억원이다. DC, IRP 전체 실적배당형 상품의 약 24%를 차지한다.
문제는 채권혼합형 펀드가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면 현재 채권혼합형 펀드에만 가입돼 있는 근로자들은 100% 위험자산을 들고 있는 셈이 된다. 채권혼합형 펀드에서 자금을 빼내 예금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를 전체 퇴직연금의 30%까지 넓혀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채권혼합형 펀드를 안전자산으로 취급하면 추가로 주식형펀드에 70%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채권혼합형에서 편입하고 있는 주식 투자까지 합하면 근로자들은 최대 82%까지 주식을 담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채권혼합형펀드를 안전자산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가입자가 많은 만큼 아직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세부적인 내용은 조만간 금융위에서 조율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이분법으로 바뀌면서 가입자들의 조정 능력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당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 운용 여력이 늘어나면 주식 60%, 채권 40%를 담는 주식혼합형펀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주식혼합형펀드는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일정하게 조절해주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따로 투자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개정안대로라면 주식혼합형펀드 상품 자체가 위험자산으로 편입된다. 주식혼합형 펀드에 가입하더라도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에 30%를 투자해야 한다. 주식형펀드의 성과가 좋아 위험자산의 비중이 7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면 근로자 스스로 어느 금융상품에서 돈을 빼 위험자산 비중을 줄일 지 결정해야 한다. 위험자산의 비중이 법적 수준을 초과면 퇴직연금 판매사가 근로자에게 운용지시 변경을 권해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파생상품 투자 제한으로 퇴직연금에 편입할 수 없었던 합성 ETF(상장지수펀드), 주가연계펀드(ELF) 등도 투자할 수 있는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바뀐 제도를 빨리 파악해 고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