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성장 경제 'Esc'…ESG로 다시 뛰자

반준환 기자
2020.01.01 05:00

[2020 새로운 10년 ESG]1-<1>'환경개선·사회책무 이행·건전한 지배구조' 관심 고조…美 200대 CEO협의회 주주자본주의 탈피 '변화 동참'…韓 경제 저성장 해법은 '동반성장' 삼성·SK 등 앞장

[편집자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ESG 친화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은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원법을 도입하는 국가도 생겨났습니다. ESG는 성장정체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20 새로운 10년 ESG’ 연중기획 기획을 통해 한국형 자본주의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기업의 투자와 의사결정은 주주를 위한 이윤창출만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기업은 종업원과 고객, 사회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보탬이 돼야 한다. 주주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기업의 유일한 존재 이유여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탐욕의 상징’이 낸 성명서=지난해 8월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이다. 1972년 설립된 BRT는 미국 2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협의체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비슷하다. BRT 소속 기업의 미국 근로자는 1500만명 이상이고, 이들의 연간 수익만 7조달러(8122조원)가 넘는다. 기업이익을 위해선 WTO(세계무역기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까지 입김을 불어넣기 때문에 ‘자본주의 탐욕의 상징’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BRT가 내놓은 성명서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기업의 설립 목적에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문구를 버렸다. 이 대신 ‘종업원·소비자·환경·지역공동체·거래업체 등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지속 가능한 이윤창출’을 집어 넣었다. 제이피(JP)모간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BRT 회장)을 비롯해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배라, 블랙록의 래리 핑크, 보잉의 데니스 뮬런버그 등 CEO 181명이 성명서에 서명했다.

이는 ‘제로섬(zero sum)’ 논리가 지배했던 경제논리를 플러스 섬(plus sum)으로 전환하려는 자본주의 변화의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는 설명이다.

바트 훌라한 비랩 공동 설립자는 지난해 연말 머니투데이와 만나 “경제 시스템에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랩은 미국의 비영리단체로 비콥(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기업에게 부여하는 브랜드 인증) 사업을 펼치고 있다.

◇기업·소비자·정부 ESG 열풍=그는 “지난 백 년간 자본주의는 경제성장을 이끈 훌륭한 시스템이었지만 이제는 기업의 과도한 이익추구라는 부작용에 직면했다”며 “이제는 소수 주주의 이익 대신 더 많은 사람들과 이해 관계자 모두를 위한 경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특히 ESG(환경개선, 사회책무 이행, 건전한 지배구조 정착 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활동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ESG는 SRI(사회책임투자)의 원칙 중 하나인데 이제는 사회 전반을 발전시키자는 패러다임으로 변모했다. 20~30대 소비자들도 EGS 기업을 지지하는데 리사이클 원단과 유기농 목화를 이용해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가 미국 아웃도어 2위로 성장한 것이 대표사례다. 바스프는 폐플라스틱을 재사용하는 ‘켐사이클링’을 시작했다.

미국 36개주와 이탈리아는 “경영상 결정이 주주에게 손해를 입혀도 공익과 환경보호를 위한 취지였다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베네핏 코퍼레이션 법을 도입했다. 프랑스는 2018년 4월 ‘기업의 성장과 변혁을 위한 행동계획(PACTE)‘법을, 인도는 같은 해 7월 기업 순이익의 2%를 ESG 같은 활동에 지출하라는 이른바 ‘2%룰’을 도입했다.

◇한계봉착 한국형 성장주의, ESG에서 해법 찾아야=이처럼 ESG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주목되는 것은 플러스 알파(α)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ESG 개념이 도입된 것은 10년이 넘는다. 2006년 UN에서 SRI(사회책임투자) 원칙을 제정하면서 ESG도 한국에 소개됐다.

그러나 해외에 비해 국내는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편이다. 소비자들은 환경(E)과 사회적 책임(S)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기업들은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자는 거버넌스(G) 이슈를 소유-지배구조 재편으로만 받아들인 탓에 과민반응을 보였다. ESG 논의가 과도하게 G로 쏠렸던 탓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상화된 미세먼지 문제로 환경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 책임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정부도 장기적 관점의 성장정책을 고민하게 됐다. 1%대로 낮아질 저성장과 산업기술 한계봉착, 제조업 경쟁력 상실, 인구절벽 및 노령화, 부와 계층의 양극화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런 숙제를 안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경제는 ESG를 통해 예정된 위기를 늦추고 도약에 필요한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머니투데이가 ‘2020 새로운 10년 ESG’를 연중기획 주제로 정한 이유다.

박유경 APG(네덜란드 연기금 운용공사) 아태담당 이사는 “ESG 활동을 통해 기업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면 한국사회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이라며 “ESG 문제를 10년 가까이 논의한 삼성전자는 현재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힘을 모아 ‘한국형 ESG’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박 이사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시작됐다. 국민연금은 ESG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가기로 했고 SK그룹 등 기업들도 ESG 기반 성장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글로벌 운용사인 헤르메스연금자산운용의 자회사 헤르메스 에퀴티오너십서비스(EOS)의 한스 크리스토프 허트 대표는 “한국은 기업과 주주,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동반성장이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이라는 신뢰와 믿음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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