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1997년 외환위기도, 2008년 금융위기도 뛰어넘는 역사상 최대 폭락장을 맞았다. 원/달러 환율은 1285.7원까지 올라 약 11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실물 경제가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자 투자자들은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각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고, 한국정부도 이날 증시안정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와 유럽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는 이상 증시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33.56포인트(8.39%) 떨어진 1457.64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지수는 2009년 7월 이후 처음으로 1400대에 진입했다. 이날 하락폭은 코스피 지수 산출 이래 최대다. 이전 최대 하락폭은 2008년 10월16일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126.5(9.33%) 하락이다. 당시 지수는 1213.78로 내려갔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56.79포인트(11.71%) 떨어진 428.35를 기록했다. 낙폭은 순위권 밖이었지만, 등락률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전 하락률 최대치는 2011년 9월12일에 기록한 11.59%였다.
이날 증시는 상승세로 장을 출발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면서 장초반부터 반락했다. 오후 들어 하락폭이 거세지면서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 모두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매도 사이드카는 5분간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이 정지되고, 서킷브레이커는 20분간 주식 거래가 중단된다.
이날 오후 정부는 증시안정기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증시는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조업 생산 차질, 소비 축소 등 경제 타격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까지 기업 연쇄 부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제, 무엇이 트리거가 돼 경제 위기를 불러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 유럽에서 확진자 수는 8만5000명으로 중국(8만900명)을 웃돌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전했다.
특히 각국의 봉쇄조치가 이어지자 항공주는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24.86%, 아시아나항공은 하한제한폭인 29.94%까지 떨어졌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면 대한항공이 발행한 매출채권도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며 "다들 신용발작을 두려워하며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시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미국이 이달 들어 두차례나 파격 금리인하에 나서고 CP(기업어음) 매입, 긴급예산 지원 등을 발표했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 ECB(유럽중앙은행)가 7500억유로의 양적완화를 발표했지만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 센터장은 "증시안정기금은 급락시키는 요인이 사라질 때쯤 효과를 발휘한다"며 "증시안정기금이나 공매도 조치는 바닥을 잡아주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증시가 하락하고 있지만, 위험이 실물결제나 시스템으로 확산되지 않게, 방어막을 쳐야 한다"며 "예를 들어 지수를 떠받치기 보다는 주가 급락으로 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할 수 있으니 유동성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용경색으로 번지기 전에 정부가 채권을 사줘야 한다"며 "미국에서 연준 관련 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법을 개정해서라도 신용경색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정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퍼주기식으로 도와줘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정부는 쓸 수 있는 카드를 최대한 꺼내 놔야 한다"면서도 "미국처럼 회사채나 기업 어음을 정부가 매입하면 자칫 부실기업 퍼주기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신 재정지출 뿐 아니라 세금 감면 등 소득과 고용을 보전할 수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석현 KTB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고 해서 정책이 무효하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며 "기업의 채무불이행. 또는 신용경색을 방지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활동 중단이 이번 사태의 본질인 만큼 이 상황이 해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거 하락장에 금융당국이 내놓았던 대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기업 펀더멘털 훼손이 증시 급락 근본 원인이지만, 쏟아지는 외국인 투매에 수급이 망가진만큼 수요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위는 지난해 G2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로 증시가 급락했을 당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이 안에는 △자사주 매입 규제 완화 △주식 공매도 규제 강화 △일일 가격제한폭 축소 △증시안정기금 조성안 등이 담겨있다.
이중 남은 카드는 증시안정기금과 가격제한폭 축소다. 증시안정기금은 현재 폭락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제한폭 축소는 시장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지금으로선 고려하기 어려운 방안이다.
이보다는 투자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한시적이더라도 세제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자사주 매입 규제를 완화한데 이어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계획하는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과 안정적인 기관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펀드 세제 혜택 강화 등이 그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수급이 너무 무너져 있어 수요를 끌어올릴 만한 세제 지원안이 절실하다"며 "자사주 매입 후 소각하는 기업들에 대한 세제 지원안, 장기투자펀드에 대한 세제 지원 강화 등이 도입돼야 투자수요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연구위원은 "증시안정펀드도 폭락장을 막을 순 없지만 있으면 좋다"며 "가격 제한폭은 서킷브레이커나, 종목별 가격변동성 완화장치가 있기 때문에 줄일 필요가 없고,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