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ESG를 향한 투자자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국내에서도 ESG 정보공시는 이미 피할 수 없는 과제로 꼽힌다.
윤승영 한국외대 교수는 11일 머니투데이 주최로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21 ESG 글로벌 로드쇼'에 참석해 "투자자와 감독기관의 ESG 정보 공시 요구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주요 감독기관과 증권거래소는 대기업 공시를 장려 또는 의무화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이날 미국의 ESG 공시 제도를 통해 앞으로 한국의 정보공시 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ESG 논의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EU(유럽연합)가 법제화를 통해 공시 제도를 강화한다면, 후발 주자인 미국은 투자자 관점에서 접근한다. 기관투자자 등 투자자들이 각 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고 만약 공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는 식이다.
현재 미국의 ESG 공시 체계는 주로 민간 평가 지표에 의존하고, 투자 분석에 부적합하다는 한계가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자발적인 공시는 늘었지만 표준화된 체계가 없어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도 ESG 정보 표준화를 둘러싸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는 추세다.
기업이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제공했거나, 이를 누락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 소송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구체적인 ESG 공시와 선언적인 공시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의미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윤 교수는 "ESG 논의를 더 자세히 다룰수록 합리적 투자자는 공시 문구를 선언적이 아니라 사실적 표현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ESG 공시에서 중요성을 판단하는 보편타당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중요성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에서도 기업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다양하게 마련된 상태다. 각 기업은 장기 성장 전략과 ESG 평가 지표의 상관관계, 기후변화가 미칠 잠재적 영향, 위험관리 전략 등을 자세히 공시해야 한다. 반면 공시 의무가 과도할 경우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여전히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윤 교수는 이 같은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국내에서도 표준화된 ESG 공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 자본시장 전반에서 ESG 공시를 표준화하고 기후 관련 시스템 리스크를 조명하는 보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며 "투자자가 정보에 근거한 투자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ESG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발행회사는 중요한 ESG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공시 규정은 각 기업의 역량을 고려하고, 자본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G 공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민·관의 유기적인 협력도 요구했다. 기업의 기후위험 공시가 신속히 필요하다면 입법적 지원을 바탕으로 공시 체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윤 교수는 "기존 공시 체계를 활용하는 동시에 규제당국과 상장기업이 효율적이고 유연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다차원적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며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의 관점으로 기업과 사회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의무공시는 ESG 공시 개선에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현실적 어려움도 존재하는 만큼 면책 조항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향후 예측정보와 다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의 문구를 포함한 경우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이다.
윤 교수는 "ESG 관련 공시에 더 많은 투자자가 관심을 보이는 만큼 감독당국이 성실하고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공시에 대한 면책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는 현재의 자율공시체제뿐 아니라 의무공시 체제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