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초강세 원인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다. 원/달러 환율 1350원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3일 "달러화 초강세를 유발한 핵심 원인은 유로화·파운드화의 상대적 약세"라며 "유럽과 영국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위험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돌파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7원 오른 1345.5원에 마감하며 13년만에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외환당국 구두개입으로 장중 한때 환율이 하락반전했지만 오후 들어 달러화가 추가 강세를 보이자 원화 약세를 피할 수 없었다.
박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0년 넘는 경력의 경제학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동유럽 담당연구원, 대우경제연구소 해외지역팀 연구위원을 거쳐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2004년부터 하이투자증권(당시 CJ투자증권)에서 15년간 간판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리딩투자증권을 거쳐 2019년부터 하이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유럽 경제가 흔들리며 22일(현지시간) 유로와 달러의 등가를 의미하는 유로/달러 패리티(1유로=1달러)는 무너졌다. 유로화는 달러대비 0.99달러대 초반까지 밀리며 20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는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전년비 10.1%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로 올라섰고 영란은행은 연말 물가상승률을 13.3%로 전망했다"며 "영국의 2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0.1%로 역성장했고 영란은행이 연말에 경기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사실상 영국 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유로존을 대표하는 독일의 물가 위험도 심각한 수준에 진입했다. 7월 독일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비 37.2% 폭등했다. 이는 생산자물가지수가 집계된 1949년 이후 최고치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선행지표다.
영국과 독일, 유럽 주요국 물가 급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이 주 원인이다.
독일 생산자물가지수 중 에너지 항목은 전월비 14.7%, 전년동월비 105% 급등했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쓰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독일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줄였고, 전일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1년전 대비 1000% 폭등한 시세를 기록했다.
그는 "겨울철을 앞두고 천연가스 및 난방 요금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천연가스 공급 차질이 계속되는데 가뭄으로 인한 전력생산 차질까지 겹치며 독일은 지금 하이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에 이어 독일까지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3분기 또는 4분기 역성장 진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위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이 자동차 부품, 화학, 철강 등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 제조업 경기를 강타할 경우 독일은 물론 유로존 경제 전체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지금으로선 유로화 약세의 돌파구가 없어, 추가 약세 흐름이 이어지며 달러 초강세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내 증시에서는 슈퍼달러와 원화약세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환율 쇼크'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환율이 임계치 이상을 넘어버릴 경우 그 자체로 외국인 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며 자기실현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그는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350원 수준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높다"며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이 더 악화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면 원/달러는 1400원대를 위협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투자심리는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금융기관이 무너지고 신용위기·시스템 위기로 초유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은 금융기관의 신용위기 신호도 뚜렷하지 않으며 2008년 당시와는 상황이 분명히 다르다"며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올라 대규모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주식시장이 반토막 나는 일은 이번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주식시장에는 결국 미국 경제와 미국 주식시장이 가장 중요하고, 시장에는 아직 미국 경제가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에 돌입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