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의 여정은 깎아지른 듯한 고산준령을 정복하는 산악등정에 비유되곤 한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변수와 도처에 산재한 기술적 리스크는 막대한 투자자본과 수십년의 노력을 일거에 매몰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위기 요인이다. 자원이 한정된 극한의 고지대에서 정상을 향하는 유일한 방법은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을 결합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제어하고 최적의 경로를 공동으로 모색하는 전략적 협업이다.
기업의 객관적인 위치를 진단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며 목적지까지 함께 호흡하는 조력자가 중요한데 정보영 디자인바이제이 대표는 특히 초기 방향설정이 중요한 스타트업 기업에게 바이오 셰르파라 평가받는 인물이다. 최적의 비즈니스 로드맵 설계와 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연구실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기술의 가치를 숫자로 증명해 내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정 대표는 영남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식품면역학)을 거쳤다. 이후 일본 국립 시즈오카 대학에서 응용생명공학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에서 생물공학(Fluxomics)을 전공했다. 일본과 독일 양쪽에서 학위를 딴 더블박사가 됐다. 일본의 정교함과 독일의 논리력을 모두 흡수한 글로벌 전략가의 토대가 마련됐다.
이후 한국 화학연구원에서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미백균주와 박테리아를 연구해 새로운 균주개발 특허와 기술이전까지 마무리한 그를 눈여겨 본 클리노믹스의 김병철 대표가 기술마케팅 담당으로 스카우트했다. 연구개발에서 기술영업으로 전환한 계기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직한 그의 커리어는 성공적이었다.
"박사가 왜 영업을 하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그는 액체생검과 순환종양세포(CTC)라는 복잡한 기술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해냈다. 이후 싸이토젠 사업개발(BD) 시절,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상대로 직접 매출을 일으킨 성과는 그의 비즈니스 감각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긴 호흡의 임상보다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는 비임상(Non-clinical) 효율화에 주목했고, 2023년 설립한 '휴믹'을 7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세우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해외 바이오 기업 뿐 아니라 JP모간 등 글로벌 IB와도 협업이 진행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요령, 그리고 긴 호흡의 임상보다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는 비임상 시장의 가치를 알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23년 설립된 비임상 CRO(임상시험수탁기관) 기업 휴믹에서 사업총괄 대표를 맡아 거대한 동물실 시설 없이도 타사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에셋 라이트(Asset-Light) 전략을 도입해 설립 7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이후 우정바이오를 거쳐 독립해 디자인바이제이를 설립했다. 2024년 11월 설립한 1인 법인인데 그가 쌓아온 150여 곳의 제약바이오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허브가 됐다. 디자인바이제이는 현재 기업들의 사업전략 자문을 맡고 있다.
현재 정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이는 베이스캠프는 프리클리나다. 이곳은 류마티스 내과의 세계적 권위자인 강영모 경북대 의대교수가 2018년 설립한 기업이다. 강 교수가 닦아놓은 자가면역질환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 자산에 정보영의 비즈니스 설계 능력이 더해지며 프리클리나는 '기술 중심 CRO'로 급부상하고 있다.
강 교수는 경북대 병원의 풍부한 임상 데이터와 산부인과 클러스터와의 협업을 통해 얻은 줄기세포 자원 등을 바탕으로, 실제 환자의 병태 생리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인간화 마우스 모델을 개발했다. 정 대표는 프리클리나 CBO(최고 비즈니스 책임자)를 겸임하고 있는 외부 인사다.
인간화 마우스는 선천적으로 면역체계가 결핍된 마우스에 사람의 줄기세포나 면역세포를 이식한 것이다.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마우스에 재현한 것이다. 일반 마우스는 인간용 항체나 세포치료제의 반응이 다르지만 인간화 마우스는 사람 인체와 유사한 환경이라 약물의 효능과 독성이 정밀하게 검증될 수 있다.
기존 일반 마우스 실험의 임상 예측 성공률은 7%에 불과하다. 수조 원을 투입한 신약 후보 물질이 임상 단계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이처럼 낮은 확률 때문이다. 프리클리나의 인간화 마우스는 이 확률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3%포인트 차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신약 개발사들에 수천억 원의 매몰 비용을 아끼게 해주고, 정상을 향한 디딤돌을 제공하는 생존의 지표다.
정 대표는 "성공확률 0.01%의 신약개발 경쟁에서 3%포인트 차이는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다"며 "전 세계 신약 파이프라인 중 약 50%가 항체 및 세포치료제인데 인간화 마우스로 임상결과 예측률을 올릴 수 있다면 희귀, 난치병 극복에도 큰 보탬이 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신약 파이프라인 보유국으로 3400개의 파이프라인이 있다"며 "이 가운데 50%인 1700개는 항체신약이고, 이들은 모두 프리클리나가 제공하는 것과 같은 정교한 마우스 모델 실험이 필요한 타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CBO로 합류한 후 프리클리나는 기존에 취약했던 항암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가 합류한지 6개월 만에 25억원의 신규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2024년 매출이 24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장 속도다. 2026년 매출 목표는 50억원으로 설정됐다.
그는 단순히 조언하는 컨설턴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유망한 기술을 사 오고(License-In), 가치를 높여 되파는(License-Out) 오픈 이노베이션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씨티셀즈, 씨앤큐어, 휴사이언스 등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기업들이 서로의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코디네이트하는 것, 그것이 그가 정의하는 셰르파의 진정한 역할이다.
그가 라이센싱 딜과 인수합병(M&A) 자문을 위한 파트너 네트워크 구축에도 힘을 쓰는 이유다. 기술분석은 디자인바이제이가 맡고 IR·PR은 원파트너스와 협업하고 재무분석은 앤디스파트너스 같은 벤처캐피탈과 공조하는 다각적 비즈니스 얼라이언스가 이뤄지는 중이다.
그는 "한국 바이오 산업이 연구실의 고립을 벗어나 시장의 협업으로 나아가는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여실히 증명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제는 개별 기술의 우수성을 넘어 정교한 비임상 설계와 전략적 공조만이 신약 개발의 실질적인 마침표를 찍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