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주가 급락을 겪은 투자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 이란 전쟁 출구전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시는 이란 전쟁 장기화가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자 외국인을 중심으로 대량 매도세가 터졌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서킷브레이커,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96% 내린 5251.87에 마감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 대비 20% 오르면서 배럴당 108달러를 넘어서자 중동발 지정학적 긴장, 물가 상승 우려, 금리 전망 불확실성 등이 한꺼번에 시장을 덮쳤다. 미군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가운데 전쟁이 조기 종식될지에 대해선 우려가 제기됐다.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지타바 하메네이가 선출되면서 항전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지타바 헤메네이는 사망한 부친보다 강경파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 이란 작전을 끝내고 협상에 나서는 조건으로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상태다. 그러나 시장은 이란의 무조건 항복보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불안 가능성을 높게 봤다. 유가 불안은 외국인 중심의 대규모 매도로 이어졌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3조1805억원, 1조5332억원 규모로 순매도했다. 이날 오전 10시31분 52초에는 코스피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서킷브레이커는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발동되는 제도다. 시장 전 종목의 거래가 20분간 중단된다. 이번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지난 4일 이후 3거래일 만이다. 발동 당시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52.80포인트(8.1%) 하락한 5132.07을 나타냈다. 장중 낙폭을 부분적으로 만회한 것은 개인이 4조6255억원 규모를 순매수한 결과다.
삼성전자가 7.81% 내린 17만3500원에 마쳤다. 장중에는 16만7300원까지 내려 17만원선을 하회했다. SK하이닉스는 9.52% 떨어진 83만6000원에 마쳤다. △현대차(-8.32%) △삼성전자우(-5.08%) △LG에너지솔루션(-4.77%) △한화에어로스페이스(-3.17%) △삼성바이오로직스(-3.95%) △SK스퀘어(-7.96%) △두산에너빌리티(-1.84%) 등 시총 상위권 대부분이 내렸다.
코스닥은 4.54% 내린 1102.28에 마감했다. 개인이 5186억원 순매수했고 기관도 479억원 순매수해 지수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외국인인 5441억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도 오전 10시31분 급락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관건은 전황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다. 외신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오는 등 전황 소식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다. 이란군의 대응능력이 약화한 시점에서 미군이 지상군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란공습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전쟁을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았다. 미국도 당장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시각 기준 이날 밤에는 미국 컨퍼런스보드 고용동향지수(ETI)가 발표된다. 이번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지수(PCE)가 공개되는 것도 변동성을 높일 요인으로 꼽힌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 트럼프의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다"라며 "당초 미국인 보호와 핵 프로그램 제거가 목적으로 제시됐지만, 점차 메시지가 바뀌면서 정권교체 관여 의지와 함께 이란의 무조건 항복 요구가 제시됐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혁명수비대와 보수성향 인사들이 여전 히 이란 권력의 중심에 있기에 '무조건 항복'에 응한다면 놀랄 일이 될 것"이라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출구전략의 부재로 해석된다"고 했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이란 관련 뉴스플로우 및 국제 유가 방향성, 미국 2월 CPI(소비자물가지수), PCE(개인소비지출), 4분기 GDP(국내총생산) 등 물가 및 경기 지표, 오라클, 어도비 등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업 실적, 국내 코스닥 액티브 ETF(상장지수펀드) 출시 및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일정 등 대내외 이벤트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