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 3월 중순까지 사내 정기회의에서대표이사·임원·영업인력·평가실장 등이 모여 발행사의 정보를 공유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정보는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자산운용사, 증권사 IB(투자은행) 등으로 보내져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용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평가와 영업의 업무영역을 분리한 차이니즈월(내부정보 교류 차단장치·ChinessWall) 제도를 위반 했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2015년 신용평가 업무 담당 직원들이 영업활동에 관여했다는 판단으로 3대 신용평가사 대표를 문책경고하고 기관에 시정조치를 요구한 사례가 있다. 2018년에는 부문검사 결과에 따라 이해상충방지체계 미흡을 기관주의와 경영주의로 제재하고 이해상충 방지 시스템 미흡만으로도 제재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3월 말까지 2주마다 평가 인력과 영업 인력 등 핵심 임직원이 모여 종합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는 안영복 나이스신용평가 대표이사를 비롯해 기업평가, 금융평가, 평가정책, 기업·금융·SF RM 등 사내 모든 부서장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김명수 전 나이스신용평가 대표 때부터 안 대표 때까지 지난 2년간 꾸준히 진행해왔다. 4월부터는 평가와 영업이 번갈아 격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전까지 나이스신용평가의 임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우에는 이름, 직책, 업체 등과 함께 해당 정보가 회의자료에 기재됐고, 이를 통해 평가와 영업이 직·간접적으로 의견을 나눴다.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나이스신용평가의 종합회의 회의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신용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물론, 주가와 투자 등 금전적인 득실에 미칠 수 있는 내부정보 등이 회의에서 공유됐다.
나이스신용평가 임직원이 만난 시장 관계자 면면을 살펴보면 리서치센터를 비롯해 증권사 투자은행(IB)부문·종합금융본부·채권운용본부, 자산운용사의 FI본부·리얼에셋·대출센터·투자운용부서, 벤처캐피탈(VC)의 인수합병(M&A)본부, 보험사 자산운용본부, 글로벌은행 여신심사 등 투자업계 종사자로 대부분 핵심 정보를 다루는 고위급 임원이다.
평가 부서의 A 직원에 따르면 7대 그룹사 재무팀 임원은 "은행에서 자구안을 요청받았고 (회사 신용평가 등급)이 하향될 경우 은행 내부 등급 이슈로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지주 보유 사업부문 매각 등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차입금을 줄이는 등 여러 방안을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영업 부서(신규 고객 및 투자자 관리·RM)의 B 직원에 따르면 한 방산업체의 재무실 임원은 "수주잔고는 더욱 확충될 전망이지만 최근 주가 상승은 경영진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M&A와 지분투자는 신용평가사 등이 요청한 수준의 재무적 보완이 뒷받침되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나이스신용평가의 이런 회의가 차이니즈월 제도 위반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용평가회사 표준내부통제기준 제32조에서는 업무간 이해상충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정책을 수립·운영할 의무가 있고, 신용평가 업무와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정보 제공·인사교류를 제한하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 법률 제335조11에서는 신용평가사 임직원은 직무상 알게 된 요청인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이용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이니즈월은 기업의 무분별한 등급 쇼핑과 신용평가사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신용평가사는 기업의 채권 신용평가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거두는데, 기업들은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수록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어 평가기관을 압박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신용평가는 총 3개사로, 이 중 2곳에서 회사채 등급을 받는다. 평가하는 2개사 간 등급 경쟁, 3개사의 수주 경쟁이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눈치보기식 평가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공정한 신용평가를 위한 선진화 방안을 수년째 들여다보고 있다. 2013년 동양사태 당시 신용평가사들이 동양그룹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유지하는 등 늦장 대응해 사태를 키웠다고 보고 특별검사를 실시해 기관경고와 임직원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최근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신용등급이 기업회생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유지되면서 투자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해당 회의는 채권 및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의견과 전망을 단순 취합해 신용평가사로서 총체적으로 시장 동향과 흐름을 파악하는 자리에 불과하다"며 "자본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신용평가사 표준내부통제기준 등에 명시돼 있는 신용평가사의 의무사항인 데다 차이니스월은 결코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현재 평가와 영업 간 회의 시간을 달리 하고있지만 양쪽의 일정이 맞으면 다시 모여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