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사 중 9곳이 기후변화 등 미래 위험으로 수천억~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직접 계산해 공개하고 있지만 정작 법정공시인 사업보고서에서는 이 숫자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공시의 양은 늘었지만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는 여러 보고서에 흩어져 있다. 공시의 양보다 투자정보로서의 질과 연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7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사의 최신 지속가능경영보고서·통합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30곳 모두 미래 위험이 회사에 미칠 재무영향을 평가했고 29곳은 그 결과를 수치로 공개했다. 하지만 미래 위험으로 실제 얼마의 손실이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금액으로 제시한 곳은 9곳뿐이었다.
공개된 금액은 작지 않다. 현대자동차는 폭염·침수·산불 등 물리적 기후위험에 따른 연간 손실을 2030년 2200억~3000억원, 2050년 5500억~1조2200억원으로 추정했다. 하나금융지주는 물리적 기후위험에 따른 충당금 증가액이 2050년 최대 3조643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배출권 거래제 강화에 따른 배출권 구매비용의 장기 재무영향을 404억원으로 계산했다.
문제는 이 숫자를 확인하려면 투자자가 회사 홈페이지 등을 방문해 별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재무효과를 금액으로 공개한 9개사의 2025년 사업보고서를 대조해 봐도 9곳 모두 사업보고서에서는 같은 위험의 미래 재무효과 금액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사업보고서에 위험 관련 내용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탄소중립 목표와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설명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온실가스 배출권과 관련 부채의 회계처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최대 1조2200억원 손실 전망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404억원 배출권 구매비용 전망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따로 찾아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이미 계산해 공개한 중요한 미래 재무정보가 법정공시와 연결되지 않으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회사의 같은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보고서를 오가야 하는 셈이다.
사업보고서가 통상 3월 제출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그보다 수개월 뒤 발간되는 시차도 있다. 다만 이후 산출·공개된 중요 미래 재무정보를 기존 법정공시와 연결해 투자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부족하다.
이 문제는 지속가능성 공시가 법정공시로 편입되는 2028년부터 더욱 중요해진다. 금융위원회는 2027회계연도 정보를 담는 2028년 공시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제도화할 예정이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국제 공시기준도 공시량 자체보다 지속가능성 위험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실적, 현금흐름에 미칠 영향을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지속가능성 정보와 기존 재무정보 사이의 연결성도 핵심 원칙이다.
최근 일본도 공시의 양보다 투자정보의 질과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공시체계를 손질하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4일 세계 최대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기관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청(NBIM)과 함께 투자자 관점의 공시제도 개편 논의를 진행했다. 앞서 경제산업성은 기업의 중복 공시 부담을 줄이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체개시'(一體開示·문서통합)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
김훈정 광교회계법인 회계사는 "공시는 정보의 양보다 중요한 위험이 기업가치와 재무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투자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속가능성 정보도 기존 재무정보와의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시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