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만 보다간 쪽박?..."외면 못 해" 확 바뀐 분위기, 유럽도 K증시 '러브콜'

런던(영국)=성시호 기자
2026.10.01 07:00

[증권사, 돈 버는 해외진출] <3> 종합

'삼전닉스 더 담아야하는데...' 철옹성 유럽도 K증시에 '러브콜'

국적별 한국 상장주식 보유현황/그래픽=윤선정

#올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식시장 TOP2 주가가 급등하자 유럽 자산운용사들이 분주해졌다. 국가·종목별 투자비중 상한선에 도달하면서 리밸런싱이 불가피한 포트폴리오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운용사·연기금은 관련주로 우회투자를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시가총액 등 내규 문턱에 걸리자 아쉬움을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발길은 오랜 미개척지로 여겨지던 유럽에서도 탄력이 붙고 있다. 유럽은 40여년 전 초기 해외진출지 중 하나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 터다. 그러나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현지 시장도 코스피 랠리 바람을 타고 최근 진입로가 열리는 분위기다.

30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영국·룩셈부르크·아일랜드·네덜란드 등 유럽권 9개국령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상장주식 합산 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702조원으로 전년 동시점 대비 137.2% 늘었다. 코스피 상승률(114.1%)을 웃돈다.

최근 한국을 향한 유럽 금융가의 관심은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쉽게 느끼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중석 한국거래소 런던사무소장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 '좀 더 지켜보자'는 시각이 존재했지만, 올 들어선 외면할 수 없는 시장으로 여기는 듯 하다"며 "현지 투자은행(IB)과 개최한 투자설명회(IR)는 지난해 대비 참여도가 매우 높았고 질문의 수준도 깊어졌다"고 했다.

그간 유럽은 한국 증권업계의 험지로 통했다. 초기 현지 기관투자자들에 한국물을 중개하는 사업을 주로 영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투자자산이 연금·보험·펀드에 집중돼 기관 영향력이 큰 시장 특성 상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데다 길게는 100년 이상 뿌리내린 글로벌 금융사들의 업력이 이중 문턱으로 작용해서다. 2010년대 초엔 증권사들이 잇따라 유럽법인을 철수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 증시에 대한 인식 개선 흐름에 따라 런던에 잔류한 한국 증권사들은 각자 특화한 생존전략을 중심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은 유럽 내 기관을 겨냥한 한국물 브로커리지, NH투자증권은 현지 인프라·기업금융 딜 발굴에 주력한다. 미래에셋증권은 브로커리지·IB·자기자본(PI) 등 업무를 병행하던 현지법인에 더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조성사를 인수하고 PI 투자용 법인을 신설하는 등 저변 확대에 나섰다.

증권사 해외 순익이 전체 순이익의 8.7% 수준(지난해 기준)으로 높지 않은데다 유럽 지역 비중은 전체 해외법인 순익의 5%도 채 되지 않을만큼 미미하다. 각 증권사 별로도 유럽 지역 수익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각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NH투자증권 런던법인의 순영업이익은 각각 20억원 안팎에 그친다. 해외법인 실적을 합산 공시하는 미래에셋증권은 2분기 런던에서 세전이익 1096억원을 거둔 것으로 추산되지만, 국가별 이익비중은 18%로 미국(37%)·홍콩(35%)에 밀렸다.

다만 유럽은 자금이 풍부한 선진 자본시장에 교두보를 유지, 동향을 파악하며 얻는 전략적 중요성 측면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과 주요 증권사들이 현지 IR 등을 수차례 개최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런던에서 이찬진 원장 주재로 현지 기관 고위관계자 초청 비공개 IR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핌코 등 글로벌 대형 IB 7곳과 자산운용사 15곳 등 총 22개사가 참석했고 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국내 금융사들도 함께 했다.

유럽권 주요 금융기관이 밀집한 영국 런던 시티오브런던 교차로 '뱅크 정션'(Bank Junction). /사진=성시호

한국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노력 역시 기업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유럽 기관의 호응을 얻는 추세다. 기민석 한국투자증권 런던법인장은 "초기 2~3년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도 막상 거래를 시작하면 10~20년씩 지속하는 게 유럽"이라며 "현재는 유럽의 패밀리오피스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 고객을 확보할 때 얻는 희열이 있다"고 했다.

한국 내 정책·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지역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망과 대응방안을 발빠르게 제공하는 우리 증권사의 가교 역할 역시 브로커리지·IB 등 업종을 불문하고 현지에서 조명받는 추세다. 글로벌 증권사와 차별화한 유연함과 맞춤형 서비스로 새 먹거리를 노린다.

이용성 NH투자증권 런던법인장은 "글로벌 증권사나 대비 몸집이 작지만, 그만큼 현지 네트워크 구축·유지에 집중할 수 있다"며 "서울과 여타 금융거점과 협력해 '원팀'으로 딜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깐깐한 유럽 투자입맛 맞추려면…"ESG 얕보지 말아야"

8일 영국 런던 영란은행(BOE) 본부 인근 교차로. /사진=성시호

"유럽에선 한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ESG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금융 선진시장인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증권업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지 기관투자자들이 ESG 확립 여부를 주요한 투자 기준 중 하나로 여기는 만큼 유럽 거대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 역시 이 부분을 외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머니투데이가 최근 영국 런던에서 만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ESG가 유럽 연기금·자산운용사들의 마지막 투자처 선정 문턱으로 자리한다고 설명했다. 강한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기업도 ESG 리스크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의 한 기관은 당초 투자하지 않던 한국 특정 종목이 급등하며 벤치마크(운용성과 비교기준) 수익률이 높아지고 자사 펀드 상대 성과를 위협하자 내부규정을 완화하며 투자 개시를 검토하다 단념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실사가 막판 변수로 작용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관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내부절차를 거쳐 투자기준을 완화했지만, 개별종목에서 부각된 오너리스크 탓에 투자가 무산된 사례"라며 "간혹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ESG 등급이 미흡하면 기업 IR미팅 제안까지 거절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ESG 구성요소 가운데선 지배구조(G)가 한국 기업들의 약점으로 지목된다. 구체적으로 소유구조 투명성과 함께 일반주주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 여기에 '오너 리스크'까지 탈락사유로 거론된다. 오너 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탓에 통상 지분구조나 범죄이력 등 기록을 평가근거로 활용한다.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뿐 아니라 폭력범죄까지 예의주시하는 기관도 있다. 범죄조직이 산업계에 유입돼 홍역을 치렀던 국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관행이다.

한국 중소형주도 유럽 기관의 지배구조 리스크 문의를 피할 수 없다고 국내외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상속세 재원이나 승계구조 마련은 이미 투자 전 숙지사항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한국 금투업계에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해소방안이 논의되기 전부터 유럽 기관들은 '주가 누르기' 발생 가능성을 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현지 기관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투자문의가 오너 리스크 관련 질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아직 대기업에서도 사고사례가 잇따라 보도되니 한국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기관이 많다"고 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안티 ESG' 기조가 유럽 투자시장까지 확산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지 관계자들은 선을 그었다. 한때 화제화한 ESG 펀드의 쇠퇴는 테마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나타난 현상일 뿐, 대규모 운용자산을 갖춘 기관의 의사결정 동향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선 ESG가 이념적 논쟁거리로 부상했지만, 유럽은 명문 규제가 대거 도입된 실정이다. EU의 분산적 의사결정 체계를 감안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급진적 제도 폐지가 유럽 권역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유럽 기관 등의 투자유치를 고려하는 규모의 기업이라면, 추후 ESG 규정이 완화될 경우 발생할 매몰비용보다는 유럽계 자본 유치가 무산되면서 나타날 기회비용을 먼저 고려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 ESG 둘러싼 유럽 금투업계 말말말/그래픽=윤선정

"5만전자에 사서 장투"...유럽 '큰 손'의 한국 쇼핑법

영국 런던 타워브리지(왼쪽)와 주요 금융기관이 밀집한 시티오브런던. /사진=성시호

"기업 펀더멘털이 뛰어나도 주가가 높으면 사지 않습니다."

기민석 한국투자증권 런던법인장은 유럽에서 관찰한 기관투자가들의 특성을 묻는 기자에게 "유독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연기금·펀드가 많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2019년부터 법인을 이끈 현지 전문가로 꼽힌다.

이어 "한국 중소형주에도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며 "고객군이 다양하고 수출 성장세가 뚜렷한 기업들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고 덧붙였다. 유럽 기관투자자들은 저평가주를 장기 투자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아 해외 기업들 가운데서도 저평가 된 종목들을 눈여겨보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한국 증권사들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으로도 꼽힌다. 저평가 중소형주들의 경우 외국계 증권사의 커버리지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투자는 유럽 기관의 주특기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기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현지엔 삼성전자 주가가 5만~6만원대에 머물던 시절부터 장기 투자한 기관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곳은 2010년대부터 한국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주목, 기록적인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완진 삼성증권 런던법인장은 "한국기업 투자설명회(IR)에서 아시아권 펀드매니저는 주로 단기 전망을 묻는데, 유럽권 매니저들은 '2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가'와 같은 질문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증시 랠리가 이어지면서 대형주들 뿐 아니라 소부장 등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등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반도체 소부장 뿐 아니라 방산, 로봇, 화장품 등 수출주들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정책 관심사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해소다.

한중석 한국거래소 런던사무소장은 "저PBR주에 대해 거래소가 예고한 '네이밍 앤 쉐이밍'(명단공개)이 현지 투자자 간담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영문공시 의무화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리테일 등 사업 확장은 난점이 있다는 토로다. 한 현지법인 관계자는 "유럽 핀테크 플랫폼과 접촉했으나, 리테일 분야에선 한국시장이 우선 순위는 아닌 것 같았다"며 "아직 가시화된 것은 없으나 기회를 계속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를 노크하는 증권사도 있다. 기민석 법인장은 "예로부터 유럽에 많이 분포한 '올드머니'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업으로 도약했고, 주가상승 등으로 한국증시 투자가 주목받은 만큼 문호가 열릴 가능성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민석 한국투자증권 런던법인장(왼쪽부터)·조완진 삼성증권 런던법인장·이용성 NH투자증권 런던법인장·한중석 한국거래소 런던사무소장./사진=성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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