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애플)'
우리나라 말로 사과라는 이 단어를 키보드로 두드릴 때 손가락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현란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10개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자판의 이름은 1868년 크리스토퍼 숄이 개발한 '쿼티(Q·W·E·R·T·Y)'다.
쿼티 자판이 나오고 60년쯤 후에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알파벳을 가운데 배치해 효율성을 높인 드보락이라는 자판이 나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쿼티 자판을 사용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진화한 자판을 놔두고 자음과 모음을 분리시키거나 알파벳 순서대로 나열한 것도 아닌 이 자판이 계속 사랑받는 까닭은 대체 뭘까.
'사람들이 익숙해진 습관을 버리기 힘든 탓일까', '기술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가' 등에 대해 곱씹어 보는 시간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 꼭 한 번쯤 필요하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 가치를 탐구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전문기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원장 박영아)이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과학기술을 중심에 둔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조명했다.
◇기술이 발전하는 것인가 사회가 변화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앞날에 대해 궁금해한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미래가 어떤 모습의 현실로 나타날지를 머릿속에 그려볼 것이다. 머지않아 당도할 미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과학과 사회를 분리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기술 발전은 사회 영향 없이 기술 자체적인 논리로 발전한다는 기술결정론이나 사회·정치·경제·문화적 요인의 총화를 통해 기술이 발전한다는 사회적 구성론이 아닌 기술과 사회의 변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주류 기술이 가진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시장을 점령한 기업들의 행보를 일컫는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이라는 개념도 결국 과학기술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선 불가능하다. 무인자동차, 3D프린터, 드론, 인공지능 등의 신기술을 활용한 제조업과 맞물려 기술의 진보를 이뤄 나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과학은 '돈'이고 '교육'이고 '외교'다…한 마디로 '미래'다
과학 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변화를 감지했다면 다음 순서는 실행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이뤄낸 우리나라 역사도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주요 선진국이 앞다퉈 제조업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첨단 제조 기술 전략을 통한 제조업 부활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고 독일의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계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시킨 인더스트리4.0 정책도 제조업 부활 전략의 일부다. 중국은 세계 주요국의 제조혁신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제조 2025전략을 펼치고 있다.
과학기술은 제조업, 우주항공 등 각 산업 분야에서 뿐 아니라 교육, 외교 나아가 젠더와 통일의 영역에서까지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인터넷 사회학자 하워드 레인골드가 "로봇이 인간을 위해 남겨둘 일자리는 사고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이참에 곱씹어 볼만하다.
◇KISTEP 미래한국보고서=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412쪽/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