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축구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 에릭 라멜라는 한국 누리꾼들로부터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지난 2일 맨체스터시티와의 리그 경기 도중 페널티킥 찬스에서 손흥민에게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멜라의 슛은 상대 골기퍼에게 완벽히 읽히면서 득점에 실패했다.
당사자인 손흥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 팬들은 분노했다. 경기 직후 라멜라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몰려가 인신공격성 악성 댓글(악플)을 달았다. 악플에 대신 사과하는 한국 팬들도 있었다. 악플과 사과가 난무하면서 라멜라의 SNS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어긋난 팬심과 온라인 익명성이 유발한 사이버 폭력의 전형적인 사례다.
#SNS 스타로 유명한 김모(28)씨는 지난 2월 지인들과 함께 고등학생 A군을 납치해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 일행은 김씨가 올린 게시물에 A군이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보복에 나섰다. 이들은 A군을 납치한 뒤 장소를 옮기면서 폭행하고 동영상까지 촬영했다. 김씨 일행은 A군을 때리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접속 가능한 시대가 열리면서 사이버 폭력이 일상화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은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이나 물리적인 폭력으로 번지는 등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특히 방폭, 카톡 감옥, 떼카 등 신종 사이버 폭력 수법이 퍼지면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늘어나는 사이버 학교폭력… 방폭, 카톡감옥, 떼카 등 유행=청소년들 사이에서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사이버 폭력 역시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학교폭력을 '4대악' 중 하나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근절 노력을 기울이면서 전체 학교폭력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학교폭력 및 조치 현황'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 건수는 2012년 900건에서 2015년 1462건으로 3년 사이 62%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학교폭력 건수는 2만4709건에서 1만9968건으로 19.1% 줄었다. 물리적인 학교폭력 대비 사이버 폭력 신고 자체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사이버 폭력 행위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염 의원은 "피해 학생이 수치심을 느끼는 사진을 SNS에 게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학교 교사들과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신종 사이버 폭력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종 수법은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을 활용한 방폭, 카톡 감옥, 떼카 등이다. 방폭은 단체 대화방에서 피해 학생만 남겨두고 전부 퇴장하면서 사이버 왕따를 시키는 방식이다. 대화방 초대와 퇴장을 반복해 피해 학생을 괴롭힌다. 카톡 감옥은 피해 학생을 대화방에 나가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다. 피해 학생이 나갈 경우 끊임없이 초대하는 방식으로 괴롭힌다. 단체 대화방 등에서 피해 학생에게 집단적인 욕설을 퍼붓는 행위는 떼카로 불린다.
이런 신종 수법들을 묶어 '사이버 불링'이라고 한다. 사이버 불링의 경우 같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피해 학생이 지속적인 사이버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상당수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만연한 사이버 폭력, 대부분 無대응=더 큰 문제는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이 되거나 그 반대 사례가 발생하는 등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이버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5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3000명 중 17.2%가 사이버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이버 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는 비율(17.5%)도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폭력 가해 유형(복수응답)을 살펴보면 언어 폭력이 15.8%로 가장 많았고 따돌림(2.4%), 명예훼손(2.3%), 스토킹(2.2%) 등 유형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가해 대상은 실제로 누구인지 모르는 인터넷 이용자(48.9%)와 평소 알고 있던 사람(47.1%), 학교 친구와 선·후배(29.5%) 등이었다.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해자를 차단하거나 자신의 아이디, 이메일 등을 삭제 또는 변경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이들이 많았다. 친구나 가족, 선생님 등에게 사이버 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비율은 26.7%에 그쳤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폭력의 경우 피해 학생이 더 큰 피해를 우려해 침묵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피해 학생들이 사이버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갈수록 폭력의 강도가 세지고 피해가 장기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이버 폭력 피해 학생은 일반 학생보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성이 훨씬 더 높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APA) 연례회의에서 크리스티 킨드릭 박사가 발표한 조사 결과(13~17세 청소년 1만5545명 대상)에 따르면 사이버 왕따 피해 학생이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14.7%로 아무런 피해 경험이 없는 학생(4.6%)보다 3배 높았다. 특히 사이버 왕따와 학교폭력을 모두 경험한 학생의 자살 시도율은 21.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성 악플러로 활동하는 청소년들, 범법자 '낙인'=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을 대상으로 악플을 일삼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익명성 뒤에 숨은 청소년 악플러들은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목적 없이 재미삼아 악플을 달았다가 평생 씻을 수 없는 멍에를 뒤짚어 쓸 수 있다.
최근 유명인과 소속사들은 수사기관에 악플러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는 등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정당한 비판이 아닌 인신공격성 악플을 방관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유명 연예인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가 악플러 30여명을 고소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수많은 악플러를 고소한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역시 "악플러에 대한 선처는 없다"고 못박은 바 있다. 악플러가 학생 신분일 경우 선처를 요청하는 사례가 사라지고 있다.
가벼운 악플이거나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경우 기소유예 처분을 받지만, 정도가 심하고 상습적인 악플러는 벌금형뿐 아니라 징역형에 처하기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사건은 2013년 6320건, 2014년 8880건, 2015년 1만5043건 등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악플러를 대량으로 고소하거나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악플러 사냥꾼'마저 활동하고 있다.
◇사이버 폭력 이해가 곧 예방… 명확한 인지 교육 필요=상당수 사이버 폭력이 재미나 장난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적인 사이버 폭력에 가담한 이들조차 자신의 폭력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해선 명확한 인지 교육이 중요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초등학교 및 지역아동센터에서 강연 및 공연 형태로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을 펼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의 심각성을 명확하게 인지시키고, 사례별 교육을 통해 가벼운 장난도 사이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해선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녀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통해 사이버 폭력 피해 및 가해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피해 학생 대부분이 소극적 대응이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별 Wee센터에서 사이버 폭력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피해 학생을 위한 다양한 신고창구도 마련돼 있다. 전화 신고는 '117', 문자 신고는 '#1388', '#0117'로 하면 된다. 안전 Dream 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홈페이지(www.safe182.go.kr)에서 온라인 신고도 가능하다.
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친구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고, 개인의 힘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부모와 학교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될 경우 신고할 수 있는 기관과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