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학기술 관점 차이…"경제성장 도구" vs "인류 위한 탐구"

김인한 기자
2023.11.17 17:19

"헌법 개정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 바꿔야…경제성장 도구에 그치지 말고 인류 공헌을 위한 지식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내년도 R&D(연구·개발) 예산 일괄삭감 이슈가 정국의 핫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과학기술 관점차를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은 과학기술을 국내 경제성장 도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일본은 국제주의를 기반으로 과학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과학계에 따르면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시스템연구본부장 등 연구진은 최근 '한국 과학기술이 국제의제를 선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는 개헌과 과학기술기본법에 대한 전면 개정을 통해 학문의 자유, 인류 공헌 중심의 과학기술로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도 정부 R&D예산을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깎은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예산 삭감 배경은 R&D 구조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탈바꿈하려면 나눠먹기 예산을 줄이고 국제의제를 주도할 세계 최고 연구를 늘려야 한다는 이유였다.

홍성주 본부장은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에서 대통령 직선제 도입 등 정치 부문의 개혁과 달리 과학기술은 1960~1970년대 개발도상국 경제발전 모델을 계승해 경제발전을 최고 목표로 제한했다"며 "1989년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을 제정했을 당시에도 기초과학의 최고 목표를 경제·사회 발전 기여로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인력의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이와 달리 일본은 1987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국가 철학을 국제주의로 전면 재조정하고 그 일환으로 국제 과학프로그램을 대거 선보였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시스템연구본부장. / 사진제공=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홍 본부장은 "나카소네 총리는 일본 전후(戰後) 체제의 한계 극복을 위해 자국 경제이슈에 초점을 맞춘 시각과 소극적 외교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 철학으로 국제주의를 전면에 도입했다"며 "그 일환으로 일본의 과학기술은 '인류를 위한 과학 프론티어'(Frontier)를 탐구했고 국제 과학프로그램을 선보였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1987년 국제사회 지속 성장과 공동번영을 위한 휴먼프론티어사이언스프로그램(HFSP)을 제안했다"며 "현재까지 HFSP를 통해 전 세계 연구자 8000여명이 지원을 받았고 그중 29명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나카소네의 담대한 구상은 일본 기초과학의 목표를 '인류 생명연장과 질병극복'으로 승격한 것"이라며 "이는 일본의 '대외과학기술전략'으로서 전후 일본에 대한 '경제 동물' 같은 폄훼적 국가 이미지 극복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나카소네 총리는 1959년 과학기술청 장관을 시작으로 정치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우주개발'을 주도하면서 과학기술이 국제정치의 영역이라는 신념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국제화를 위해선 대통령의 결단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 등을 재정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D, 경제성장 도구 아닌 인류 공헌 철학으로…헌법 개정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은 다원화된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회 전반을 과학기술이 혁신한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 사회 전반을 혁신하긴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정부 R&D 투자 비중 48.6%가 경제성장 목적이다. 미국(12.8%)·독일(23.4%)·프랑스(15.6%)·일본(34.8%)보다 높은 비율이다.

홍 본부장은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본질은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한 탐구정신이며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의 하위 수단이 된 것은 비교적 근대사 일부의 현상"이라며 "1987년 '대외과학기술전략'을 전 세계에 천명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1987년 헌법 체제 아래 R&D 투자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 개정과 과학기술기본법 전면 개정을 통해 학문의 자유와 인류 공헌 중심의 과학기술 R&D 철학이 재설정돼야 한다"며 "자국경제 중심적 목표를 지양하되 국제사회 호혜주의 기조하에 과학기술 공동연구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G7(주요 7개국) 확대 정상회담 의제로 한국 주도의 '국제 과학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방안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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