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흥행 중인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향 과정을 다룬다. 오디세우스가 원하는 건 더 큰 영토가 아니라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귀향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떠난 사람도 변했고, 기다린 사람과 집도 변했다. 그래서 귀향에는 안도와 상실이 함께 있다. 관객이 이 오래된 이야기에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낯선 신과 괴수의 세계를 함께 지나며 결국 자기 삶의 그리움과 두려움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문화적 차이를 지운 평균값이 아니다. 오디세이는 매우 그리스적인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귀향과 기다림, 용기와 오만이 선명해진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여러 음유시인과 예술가를 거치며 계속 달라졌다. 놀란 감독의 이번 영화도 오래 이어져 온 이야기를 오늘의 관객에게 맞게 다시 다듬은 결과다.
월터 옹은 인류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다시 '2차 구술문화'로 이동한다고 했다. 문자와 기술 위에서 이야기의 현장성과 참여성이 되살아난다는 뜻이다. 게임이 대표적인 예시다. 영웅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이제 영웅을 직접 움직인다. 길을 고르고, 싸우고, 실패하며 그 세계의 행위자가 된다. 관객은 이제 플레이어가 되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
이 점에서 펄어비스의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붉은사막'은 흥미로운 사례다. 펄어비스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검은사막'을 10여년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서비스했다. 검은사막이 세계 각국 이용자들이 함께 써 온 전쟁과 생활의 연대기였다면, 붉은사막은 광대한 파이웰 대륙에서 주인공 클리프가 흩어진 동료와 무너진 고향을 되찾는 여정이다. '일리아드'에서 오디세이로 서사의 무게가 옮겨가듯, 검은사막에서 붉은사막으로의 이동도 거대한 세계의 연대기에서 한 인물의 귀향과 회복으로 초점을 옮긴다.
붉은사막은 검은사막과 별개의 작품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등장한 신작은 아니다. 그 안에는 오픈월드를 구현해 온 기술, 여러 문화권의 이용자를 만나며 익힌 시간, 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새로 놓을지 가려낸 판단이 스며 있다. 짧은 기간 나타난 폭발적 반응도 단순한 규모나 마케팅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래 쌓인 경험이 새 작품 안에서 설득력 있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콘텐츠는 낯선 세계에서 익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현지화와 마케팅이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지만,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은 결국 콘텐츠에서 나온다. 탐험과 도전, 성취와 귀향의 욕구는 문화권을 넘어 작동한다. 다만 그것이 실제 경험이 되려면 들어가 보고 싶은 구체적인 세계가 있어야 한다. 파이웰을 통과한 이용자가 그곳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 관계와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붉은사막은 이미 대작의 조건을 갖췄다. 오디세이는 3000년을 살아남았다. 파이웰은 얼마를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