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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 제조 분야 국내 첫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사례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1987년 포스코가 전액 출연해 설립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고동준 원장이 그리는 RIST의 미래는 '연구를 잘하는 연구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포스코라는 거대한 산업 현장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연구성과를 실제 산업으로 연결하고, 나아가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의 성장까지 뒷받침하는 '산업기술 실용화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고 원장은 최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와 인터뷰에서 "포스코라는 거대한 산업 현장을 기반으로 연구 결과를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RIST의 가장 큰 강점"이라며 "딥테크 기술의 실증은 물론 스타트업의 성장까지 뒷받침하는 연구기관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RIST 환경연구소장을 지내며 탄소중립·수소환원제철·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등 친환경 제철 분야를 이끌어온 고 원장은 내년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RIST의 역할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핵심은 '연구→실증→사업화'로 이어지는 산업기술 실용화 역량이다.
RIST에는 9개의 파일럿 실험동이 있다. 대형 설비를 갖추고 반복적인 실증을 진행하며 연구자들의 기술 스케일업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왔다. 고 원장은 "RIST는 포스코에 필요한 연구뿐 아니라 연구원이 미래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연구라면 내부 재원을 지원해서라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 필요한 기술뿐 아니라 5년, 10년 뒤 산업을 바라보며 새로운 연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 영역도 철강에서 소재·자원·에너지로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2차전지 소재를 비롯해 티타늄·알루미늄 후판, 희토류 등으로 분야를 확장하면서 이제는 '철강 연구소'라기보다 '소재 연구소'에 가까울 정도다. 티타늄 소재는 최근 품질 인증을 받았고, 알루미늄 후판 소재도 개발을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우주·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소재·자원 기술이 눈에 띈다. RIST는 반도체 식각가스와 로켓 이온추진체 연료 등에 활용되는 제논·크립톤·네온 등 희유가스에 주목했다. 희유가스는 대기 중에 극미량으로 존재해 직접 추출하기 어렵지만 제철소 산소공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농도로 농축된다. RIST는 이 농축분을 회수해 99% 이상 고순도로 정제하고, ppb(10억분율) 수준의 미세 불순물까지 평가할 수 있는 품질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
고 원장은 "4~5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업"이라며 "이미 설비 가동을 시작했고 초도 물량도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항공용으로 먼저 공급하고, 반도체용은 품질 인증 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원장이 취임 후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지난 7월 문을 연 'RIST 첨단제조 인큐베이팅센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경북도·포항시·포스코그룹·RIST가 함께 만든 민관협력형 첨단제조 창업 거점으로, 이곳에서 우리나라 '제조 유니콘 1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고 원장은 "좋은 기술을 가진 제조 스타트업이 연구실을 벗어나 시제품 제작과 실증, 양산을 거쳐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벽을 RIST가 낮추겠다는 취지로 구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창업보육센터가 사무공간 제공에 집중했다면 이곳은 '공장형 인큐베이터'에 가깝다. 고압전력(380V 이상), 냉·온수, 7종의 공정가스, 클린룸, 대형 장비 반입 인프라 등을 갖췄으며, 입주기업을 RIST 연구부서와 일대일로 연결해 시험·분석부터 신뢰성 평가, 소재·공정 검토, 양산 엔지니어링까지 지원한다.
고 원장은 이곳을 '프리팩토리(Pre-Factory)'라고 표현했다. 그는 "제조 스타트업은 시제품에서 안정적인 양산으로 넘어가는 실증과 공정 안정화 단계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제품과 공정을 안정적으로 검증하는 전 단계 공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수소에너지·2차전지·태양광·친환경 소재 분야 4개사가 입주했으며, RIST는 연간 최대 10개사를 보육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향후 AI·로봇·공정 자동화 등으로 육성 분야도 확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