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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은 흔히 '누가 더 빠르게 계산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승부처는 칩에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에 있습니다."
김상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AI 반도체가 소비하는 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칩 하나가 1㎾급 전력을 쓰는 시대에 전기를 칩까지 보내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에너지가 사라진다. 김 교수는 전력 전달 과정에서 전체 전력의 30~40%가 손실될 수 있으며 칩의 전력 소비가 계속 늘면 손실이 절반에 이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의 계산 속도를 높이는 데 관심이 집중된 사이, 전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낭비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연구해 온 반도체 구조와 질화갈륨(GaN) 소재 등에서 해법을 찾았다.
칩 바로 밑에서 전압 낮춘다…효율 '50%대→최대 95%'
전력 손실을 줄이려면 전기를 보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같은 양의 전력을 보내더라도 전압이 낮으면 더 많은 전류가 흘러야 하고 이때 전선과 부품에서 열이 발생해 에너지가 낭비된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높은 전압으로 보내고 소비지 근처에서 전압을 낮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 서버도 마찬가지다. 서버에 들어온 전기는 여러 단계를 거쳐 칩이 사용할 수 있는 1볼트 안팎의 낮은 전압으로 바뀐다. 문제는 전압을 낮추는 장치가 지금까지 주로 칩 옆에 수평으로 배치돼 거리가 있었다. 전압을 낮춘 뒤 칩까지 전기를 보내는 거리가 길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팀은 전압을 낮추는 장치를 칩 바로 아래에 수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간단히 말해 전기를 높은 전압으로 칩 밑까지 보낸 다음, 그곳에서 전압을 낮춰 곧바로 공급하는 것이다. 전기가 낮은 전압 상태로 이동하는 거리를 줄여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원리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소재가 '질화갈륨'(GaN)이다. 전압을 낮추려면 전기를 빠르게 켜고 끄는 스위치가 필요한데, 이때 저항이 클수록 전기가 열로 바뀌면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김 교수는 질화갈륨이 기존 실리콘보다 저항을 낮춰 전력 손실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팀은 이 기술을 적용하면 칩에 전력을 전달하는 효율을 기존 50%대에서 85~95%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칩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이 커질수록 절약할 수 있는 전력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IEDM·VLSI서 잇단 주목…"양산 생태계 구축이 관건"
김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반도체 소자 분야의 주요 국제 학회인 IEDM과 VLSI 심포지엄에 여러 차례 채택됐다. 연구의 독창성과 기술적 가능성을 국제 학계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김 교수는 "1~2년 전만 해도 비슷한 연구를 하는 곳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질화갈륨 기술력이 강한 중국에서 관련 연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기업 중에서는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를 오랫동안 개발해 온 인텔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대량생산이다. 현재는 연산을 담당하는 반도체 칩과 전압을 조절하는 장치를 서로 다른 공정으로 만들어 결합해야 한다. 칩은 기존 실리콘 공정으로, 전압 조절 장치는 질화갈륨 공정으로 각각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부품을 어떻게 연결하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어디에 배치할지도 추가로 최적화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가 이 기술에 필요한 공정을 아직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 것이 걸림돌이다. 김 교수는 "우선 학교 연구실에서 성능을 입증해 파운드리가 관련 공정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단기 목표"라며 "회로와 시스템 전체에서 실제 효과를 확인하는 후속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화는 우선 기술이전을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기술에 관심 있는 기업이 연구성과를 넘겨받아 개발을 이어가면 상용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술이전만으로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완성도를 확보하기 어렵다면 교원창업도 고려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기업은 충분히 검증된 기술을 원하지만 연구실에서 확보한 기술과 기업이 원하는 수준 사이에 간극이 크다면 직접 창업해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B홀에서 열리는 '2026 K-프리미어 딥테크 페스타'에서 해당 기술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는 "칩 제조사와 패키징 기업을 협력 파트너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압 조절 장치를 칩 바로 아래에 배치하려면 두 부품을 하나로 결합하는 패키징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K-프리미어 딥테크 페스타(기술이전·사업화)' 참가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