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서 '간이식술' 배운 코스타리카 의료진, 환자 생명 살렸다

박정렬 기자
2023.05.23 11:09

지난 4월 11일(현지 시각) 코스타리카 칼데론 구아디아 병원에 스무명의 간이식팀 의료진이 모였다. 딸의 건강한 우측 간엽을 절제한 후 옆방의 간경화를 앓는 어머니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18시간의 사투 끝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 지역 최초의 생체 간이식 수술이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을 한 달 넘게 따라다니며 아침부터 밤까지 술기를 익힌 '노력의 결과'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절체절명의 말기 간질환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한국의 외과 의사가 처음 개발한 간이식술이 지구 반대편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섬 코스타리카에서 꽃을 피웠다. 서울아산병원은 코스타리카 사회보장청 산하 칼데론 구아디아 병원 간이식팀이 서울아산병원이 전수한 간이식 기술을 바탕으로 이곳 최초의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이식 연수를 받은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자국 최초로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사진은 2019년 연수 당시 모습. /사진=서울아산병원

1991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 정맥을 만들어 우엽 간 전(全) 구역의 피가 잘 배출되도록 하는 '변형 우엽 간이식'을 고안해냈다. 이 방식은 우수한 안전성과 치료 성적을 바탕으로 현재 '표준 수술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코스타리카의 첫 생체 간이식 수술에도 변형 우엽 간이식이 적용됐다.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은 지난 2019년 5월, 생체 간이식에 도전하기 위해 변형 우엽 간이식과 2대 1 생체 간이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서울아산병원에 협력을 요청했다. 그해 12월까지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 24명은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아 서울아산병원의 간이식 기술을 교육받았다. 외과·마취통증의학과·영상의학과 전문의, 수술실·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수술, 수술 후 간호, 합병증 치료에 대한 6주간의 고강도 교육이 진행됐다. 매일 아침 7시에 열리는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은 물론 뇌사자 구득 과정과 밤늦게 시행되는 응급 수술까지 참여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연수 후 자국으로 돌아간 칼데론 병원 의료진은 생체 간이식 수술 프로그램을 비롯해 간이식 혈관 재건 개선, 복강경 수술 프로그램, 간호기술 표준화와 감염관리 등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마침내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생체 간이식은 뇌사자 간이식보다 수술 방법이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크다. 그런데도 코스타리카는 장기 기증률(100만 명당 7명)이 낮고 대기자 사망률(30%)이 높아 생체 간이식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코스타리카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은 자국 첫 성인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한 후 '감사합니다(Gamsa ? hamnida)'라는 메시지를 넣은 단체 사진과 편지를 서울아산병원에 전달했다. /사진=서울아산병원

수술을 집도한 칼데론병원 구아디아 병원의 바네스 로페스 교수(간췌장담도 및 이식외과)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의 도움으로 이곳 코스타리카 환자와 가족의 삶이 바뀔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승규 석좌교수는 "어려운 수술을 스스로 훌륭하게 해낸 칼데론 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을 마음 깊이 축하한다"며 "앞으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의료 기술을 전수해 세계 곳곳의 많은 환자가 새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 8000례(생체 6658건, 뇌사자 1342건), 수술 성공률 98%(2022년 9월 기준)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간이식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의술 전수에도 힘써 △2001년 터키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04년 프랑스 최초(유럽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06년 터키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 △2016년 중동 카타르 최초 성인 생체 간이식 △2019년 카자흐스탄 최초 2대1 생체 간이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간암 발생률 최상위 국가인 몽골과 베트남에는 2011년부터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연 2~4회씩 주기적으로 방문해 현지 의료진을 양성하고 의료 인력을 교류하며 간이식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