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성 장질환은 장에 염증이 생기면서 혈변·설사·복통 등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만성질환이다. 대부분 15~35세의 젊은 층에서 발생하는데, 완치법이 없어 수십 년 넘게 약물치료로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에서 주목하는 게 '단쇄지방산', 그중에서도 '낙산(부티르산·Butyrate)'이다.
염증성 장질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는 페르난도 마그로(Fernando Magro) 유럽 크론병 및 궤양성 대장염 학회(ECCO, European Crohn's and Colitis Organisation) 회장(포르투 의대 교수)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낙산은 향후 염증성 장질환과 대장암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기대했다. 전날(26일) 단쇄지방산 연구제조기업 엔피케이(NPK)가 서울에서 개최한 '장 건강의 핵심, 단쇄지방산' 심포지엄의 연자로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마그로 회장에게서 단쇄지방산과 낙산이 무엇이고 몸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물었다.
"장내 유익균은 식이섬유를 먹고 사는데, 식이섬유를 분해할 때 만들어지는 발효대사 산물 중 하나가 '단쇄지방산'이다. 영어로는 SCFA(Short Chain Fatty Acid)로 표기하며, 단쇄지방산의 종류로 △낙산(부티르산) △초산(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등이 있다. 혈액 속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뇌와 달리, 대장 상피세포는 단쇄지방산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또 장내 pH 산도를 낮춰 병원성 미생물을 줄이고,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해 영양소의 소화·흡수를 돕는다. 단쇄지방산이 △비만 억제 △항염·항균 △알레르기 반응 감소 △혈당 상승 억제뿐 아니라 대장점막을 통해 흡수돼 장벽기능을 강화하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대장 상피세포가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먹는 단쇄지방산의 70%가 낙산이다. 낙산은 대장 입장에서 꼭 필요한 영양소이자 '주식(主食)'인 셈이다. 낙산은 1814년 프랑스 화학자(미셸 오젠느 셰브렐)가 버터에서 처음 발견했다. 버터의 약 3%를 구성하는 낙산은 불쾌한 냄새를 띠지만 알고 보면 단쇄지방산 3종(낙산·초산·프로피온산) 중 건강 기능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 장에서 흡수된 낙산은 혈액을 타고 전신의 지방세포에 도착한다. 장이 정상적인 구조·기능을 유지하는 데 낙산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이다. 염증성 장질환은 유전적·환경적·면역학적 소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해 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염증성 장질환으로는 직장에서 시작해 대장 전체에 염증이 생겨 혈변·설사·복통이 나타나는 '궤양성 대장염', 입·식도·위·십이지장·소장·대장·항문 등 소화기관 어디서나 발생해 복통, 설사, 체중 감소를 일으키는 '크론병'이 있다. 사망률이 높지는 않지만, 완치법도 없다. 그런데 낙산이 부족하면 염증성 장질환 중 궤양성 대장염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 상피세포는 7일 후 새 세포로 교체된다. 낙산을 주로 먹는 대장 상피세포에게 낙산이 부족하면 상피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고 장 점막층이 약해져 장이 누수되고, 장 독소가 전신을 타고 감염시키는 단계로 이어진다. 장점막층은 면역의 1차 방어선으로, 소화 기능에 문제 있는 그룹에 낙산을 투여했더니 장점막층이 두꺼워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관련 연구가 더 많이 나와야겠지만, 아직 완치제가 없는 염증성 장질환과 대장암 치료에 단쇄지방산, 특히 낙산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염증성 장질환 환자는 장내 미생물 수가 감소하고, 미생물 구성도 달라진다. 낙산은 장 속 염증 매개 물질이 발현하는 것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장내 미생물 구성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이미 밝혀졌다. 염증성 장질환, 대장암 환자에게 향후 치료 목적으로 고용량의 낙산을 장내에 어떻게 장내 주입할지, 서방형(천천히 녹는 약)으로 만들어야 할지 등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이런 환자뿐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 고위험군(환자 가족 등)에도 단쇄지방산을 늘리는 식단을 권한다. 초가공식품을 피하고, 생선·채소·과일 위주의 지중해식 식단이 크론병 예방에 도움 된다는 이스라엘 연구 결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