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 시 지혈이 되지 않는 희귀질환인 혈우병 환자에 대해 '예방' 중심 관리체계가 구축돼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혈우병 환자란 이유만으로 일상 활동에서 제한·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지원 수준을 높여야 한단 지적이다.
박정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혈우병 환자 건강권 보장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혈우병 치료 방식은 관절 출혈 예방부터 제로 블리딩(Zero Bleeding·자연출혈이 아예 없는 상태)까지 발전했지만 국내 정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기능적 완치와 건강 형평성 보장을 위한 최적화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혈우병은 혈액 응고인자가 선천적으로 없거나 부족해 출혈 시 피가 멈추지 않는 희귀질환이다. 질환은 혈액응고 제8인자가 부족한 'A'와 9인자가 부족한 'B'로 나뉜다. 한국혈우재단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혈우병 환자 수는 2312명(A 1835명, B 477명)으로 조사됐다.
혈우병 환자는 자발적·반복적 출혈에 따른 합병증과 장애 탓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주된 출혈 부위는 무릎, 발목, 팔꿈치 등 큰 관절이다. 이 같은 관절 출혈이 반복되면 혈우병성 관절병증을 유발한다. 보통 10대 후반~20대 초반부터 관절병증이 발생하는데, 이는 혈우병 중증도와 관련이 깊다. 실제 국내 중증 혈우병A 환자의 65%, 중증 혈우병B 환자의 55%가 관절병증을 앓고 있으며 환자 3분의1 이상이 지체장애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원이 있지만 환자들 사이에선 고가의 치료비가 여전히 미충족 수요로 남아있단 분위기다. 박 교수는 "장출혈이 반복되는 60대 환자에 동의 후 예방요법을 적용했는데, (매번)약 200만원의 본인부담금이 부담된다며 출혈 발생 시에만 반복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며 "똑같이 비용 부담으로 출혈이 반복되는 경우에만 내원해 치료 자체가 불규칙한 중학생 환자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희귀중증난질환자의 의료비 산정특례 지원 본인부담률을 기존 10%에서 5%로 단계적으로 낮추는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정귀영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질환 특성과 현재 본인부담 수준,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최종안이 마련되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할 계획이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의사의 약제 용량 상한을 없애야 한단 의견도 나왔다. 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적으로 타당할 경우 (약제)용량과 횟수를 의사가 결정할 수 있다"며 "한국도 엄격한 용량 상한과 처방 횟수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미국·영국·독일·호주는 본인 약제 상황과 건강상태를 등록사업에 제출하는 게 병원과 국민의 의무"라며 "의료 빅데이터와 혈우병등록사업 통계 등을 활용해 약제 수요·공급 모니터링을 구축하고 적재적소에 맞는 약제 공급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이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사례도 언급되며 의료기관 적자 문제에 대한 구조적 대책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병원은 사용하지 못한 약제를 유효기간이 지나면 폐기해 손실 처리해야 한다. 혈우병 약제가 고가인 만큼 많게는 수십~수백억의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운 병원 입장에선 선뜻 약제를 들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단 것이다. 조귀호 한국코헴회(혈우환우협회) 전남지회장은 "지회 내 관련 사례 중 뇌출혈이 발생한 혈우병 환자가 이송된 병원에서 치료 약제가 없는 상황이 있었다"며 "수술은 마쳤지만 현재 혼수상태"라고 말했다.
구홍회 한국혈우재단 원장은 "약제 투여 시 급여 기준 등에 맞지 않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환수 조치를 당한다"며 "그만큼 적자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만큼 정부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