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의정갈등 사태 이후 전공의들이 '수련 시간 단축'과 '수련의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이들의 수련을 책임지는 교수들이 "진료할 줄 아는 의사와 능수능란하게 잘 보는 의사는 다르다"며 "진료 현장에서 전공의들이 과연 진료를 잘 볼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속한 대한의학회는 오는 12일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개편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8일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서울 중구 정동 한 식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2년 6개월여 간의 의정사태로 인한 아픔이 있었는데 이 아픔을 통해 의료계가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마련하려 한다"며 "의정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던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등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9개 학회, 26개 전문과목학회가 회원으로 가입된 대한의학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학 학술단체로서 의료정책과 의학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지난 성취를 발판 삼아 미래 의학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계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선 대한의학회가 지난 5월11일 출범한 '전공의 수련교육원'의 역할을 조명하며 전공의 수련의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현재의 수련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전공의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중시하는데, 교수는 전공의를 '학생'으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하면서 충돌해왔다"며 "수련 내실화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짚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전공의의 주 평균 수련 시간을 기존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단축하고 출산·육아·입영 등 사유에 따른 휴직 이후 수련 연속성을 보장하는 등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는 전공의는 수련생이자 의사로서 실제 의료노동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기본적 노동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제의 적용이 배제된 채 4주간 평균 주 80시간, 연속근무 36시간 등 매우 과중한 업무 강도에 노출돼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에서 '주 72시간'으로 줄이고 연속 근무를 24시간으로 제한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미 국내에선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중 레지던트 수련 기간이 기존 4년에서 3년으로 줄었는데, 여기서 수련 시간이 주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더 줄어들면 양질의 전문의를 배출하기 힘들다는 게 수련 전문의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날 박중신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미국도 주 60시간으로 줄였다가 수련의 질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다시 80시간으로 복구했다"며 "우리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량 중심의 수련교육을 지향할 때 너무 '시간'에 매몰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내과 전공의의 경우 미국은 주당 수련 시간이 80시간이고, 총 수련 시간이 1만2000시간이다. 프랑스는 주 50시간씩 1만2000시간, 일본은 총 1만1900시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9600시간으로 1만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박 부회장은 "(진료를) 할 줄 아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다"며 "전공의 수련 시간·기간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의학회의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일단 전공의를 '할 줄 아는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한 역량 중심의 커리큘럼을 짜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대한의학회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오는 12일 서울성모병원 플렌티컨벤션에서 '2026 대한의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소통과 공감, 새로운 60년을 열다'를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혼란한 상황에서 진솔한 대화로 신뢰를 회복하고, 현재 논란을 불러온 의료계 주요 현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 함께 고민해 통일된 의견을 끌어내는 게 목표다.
기조강연에선 한림대 송호근 석좌교수가 '의사 소명과 의료정책: 성공의 저주?'를 주제로, 한국 의료가 이뤄낸 성취의 이면에 누적된 제도적 모순을 진단하고 의료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는다. 이어 진행하는 8개 세션 프로그램에선 △대한의학회가 '한국 전공의 수련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대한의학회가 '지금 바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역의료 정책은?'을 논의 테이블에 올린다.
이밖에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서 '바람직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방안 모색'을 △대한기초의학협의회에서 '기초의학의 새로운 지평: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와AI의 활용'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서 '대한민국 아카데믹 메디슨(Academic Medicine)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주제로 다룬다.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지역의사제도와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 부작용과 피해구제: 환자 안전을 완성하는 의료현장의 역할'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HTA 패러다임 전환: 혁신과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위한 의료기술평가' 등을 안건으로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