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동물의약품 시장을 새로운 사업개발(BD) 무대로 주목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직접 개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인의약품(인간용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신약 후보물질과 기반 기술의 활용 범위를 동물의약품까지 넓히는 게 특징이다. 다만 인의약품 후보물질을 단순히 동물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동물의약품으로서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입증하는 것이 사업화의 관건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바이오텍들이 잇따라 동물의약품 시장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검토하고 있다. 앞서 이 시장을 신사업 기회로 보고 직접 동물의약품 개발에 뛰어든 국내 대형 제약사들과 달리 글로벌 동물의약품 기업과의 협업과 기술이전 등을 통해 각사가 보유하고 있는 신약 기술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단 점이 특징이다.
최근 골관절염 치료제 '오스카'(OSCA)의 국내 임상 2a상 결과를 발표한 강스템바이오텍은 인의약품으로서 해당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에 대한 글로벌 기술이전을 협의 중인 것과 별개로 글로벌 동물의약품 기업과의 기술이전 계약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오스카는 이미 전임상에서 대동물에 속하는 염소 모델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바 있어 향후 동물 임상을 진행하기 위한 전임상 자료는 확보된 상황이다.
어해관 강스템바이오텍 사업개발본부장은 "특히 말은 한 마리당 수억원의 가치를 갖는 경우도 많아 치료제 가격이 수백만~수천만원이더라도 수요가 충분하다"며 "말, 개 등 동물별로 나눠서 계약을 할 수 있고 개발 비용은 파트너사가 부담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는 생각보다 시장이 작아 국내에서 허가를 받는 것보다 글로벌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올릭스도 최근 동물 비만치료제를 새로운 사업 기회 중 하나로 보고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링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반려동물의 비만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다. 특히 1회 투여로도 효력이 길게 유지되는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동물의 복약 순응도가 높은 비만약으로 개발될 수 있어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켈리 킴 올릭스 사업개발(BD) 이사는 지난 14일 열린 올릭스 R&D 데이에서 "사람에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가 선택지로 있지만 동물에서는 위장 관련 부작용 때문에 한계가 분명히 있다"며 "음식 섭취에 영향을 주지 않고 선택적으로 지방 연소를 유도하는 ALK7 프로그램 같은 접근에 글로벌 동물의약품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동물의약품 시장은 이미 대웅제약, 유한양행, HK이노엔 등 국내 제약사들도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점찍은 분야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인의약품을 개발하면서 축적한 전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개발 시간과 비용 면에서 효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인의약품 시장에 비해 경쟁자가 적어 동물에게서 미충족 수요가 높은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경우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국내에선 미비한 인허가 제도, 별도의 유통망, 동물용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KVGMP) 기준과 국제 표준 간의 격차 등 여러 애로사항으로 인해 직접 동물의약품을 개발하는 게 예상보다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미 검증된 기반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들은 초기부터 글로벌 동물의약품 기업과 협업해 사업화 영역을 넓히는 전략이 적합하단 평가도 나온다.
특히 국내 동물의약품 시장의 성장 속도가 글로벌 시장보다 더딘 만큼 국내 시장을 겨냥한 직접 개발보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파트너십 전략이 더 현실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2027년 국내 동물의약품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5%로 글로벌 평균(7.7%)은 물론 일본을 제외한 주요 아시아 국가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일각에선 기술의 적용 가능성과는 별개로 인의약품 중심의 후보물질을 동물의약품으로 단순히 전환하는 것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실제로 인의약품의 용량을 조절해 동물 치료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동물의약품으로서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특성을 지닌 후보물질이나 기술이어야 승산이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글로벌 동물 의약품 제약사의 경우 이미 내부에 동물의약품으로 피봇(방향전환)할 수 있는 후보물질이 많을 것"이라며 "초기부터 동물의약품 개발을 전제하고 개발 계획이나 전략을 세워야 시장 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약가 측면에서도 인의약품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유통망, 세부 시장 수요 등 실제로 상용화하는 단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