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19세 이하 자살 사망자 37% 증가…올해 1분기도 6% 늘어
전체 자살 사망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19세 이하 청소년은 반대 흐름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과 교우관계 등 기존 스트레스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비교와 사이버폭력, 딥페이크 성범죄 등이 겹치면서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고의적 자해로 사망한 19세 이하는 96명으로 전년 동기 70명보다 26명(37.1%)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86명으로 전년 동기 81명보다 5명(6.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자살은 사망원인통계 기준 10대 사망 원인 1위다.
같은 기간 전체 자살 사망자는 줄었다. 전체 연령의 자살 사망자는 2024년 4분기 3505명에서 지난해 4분기 3215명으로 8.3%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는 3069명으로 전년 동기 3492명보다 12.1% 줄었다. 60대 이하 연령대 가운데 두 비교 시점에서 모두 자살 사망자가 증가한 것은 19세 이하뿐이다.
아동·청소년은 절대 사망자 수가 적어 작은 변화도 큰 증감률로 나타날 수 있지만, 전체 감소 흐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청소년이 처한 위험요인을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성적·친구관계 압박에 SNS 비교·폭력 겹쳐…온라인에서 시작된 갈등 하교 후까지
청소년 자살은 우울과 불안, 학업 부담, 가족 갈등, 또래관계와 학교폭력, 경제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최근에는 SNS가 기존 위험요인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증폭하는 통로로 지목된다.
청소년기는 또래의 인정과 소속감이 중요하고 외모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다. SNS의 '좋아요'와 팔로워 수, 외모·성적·경제력 비교, 단체대화방에서의 배제와 조롱이 큰 정서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SNS에서 제공되는 여러 가지 비교와 거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 그 안에서의 좌절에서 아이들이 빠져나오기 어렵다"며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이를 각자 해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갈등은 하교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단체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배제하거나 익명 계정으로 비방하는 사이버폭력은 가정까지 따라온다. 사진과 영상을 조작한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빠르게 복제·유포돼 피해자가 학교 밖에서도 불안과 수치심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피해 학생이 휴대전화를 끄거나 SNS를 떠나기도 쉽지 않다. 또래 집단과의 연결이 끊기거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더 퍼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추천 알고리즘이 자해나 극단적 다이어트, 절망감을 부추기는 게시물을 연이어 노출하면 취약한 청소년의 생각과 행동을 악화시킬 수 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SNS 이용이 수면을 잠식해 정서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 청소년 자살 예방 상담 시스템 호소 문제 1위는 대인관계(39.4%)…가족갈등 12.6%로 뒤이어
실제 상담 현장에서도 청소년의 고민은 대인관계와 학업 등에 집중됐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자살 예방 상담 시스템 '다 들어줄 개'를 통해 지난해 상담이 종결된 4만212건을 분석한 결과, 대인관계가 1만5830건(39.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족갈등 5051건(12.6%) △학업·진로 4589건(11.4%) △폭력·학대 1977건(4.9%) △성·중독 1304건(3.2%) 등이 뒤를 이었다. 기타 문제는 1만1461건(28.5%)이었다.
이지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본부장은 "청소년들이 가장 죽고 싶을 때는 성적과 친구 관계 때문"이라며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개인마다 다른 삶의 행복과 만족의 기준을 없앴고 SNS도 여기에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스마트폰 압수·SNS 일률 금지, 해결책 아냐…위험군 치료 연계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을 빼앗거나 SNS 이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플랫폼은 자해·자살 관련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추천되거나 자동 재생되지 않도록 하고, 야간 알림 등 청소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기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폭력과 불법 합성물 피해에는 신고·삭제와 가해자 분리, 수사·법률지원, 정신건강 치료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학교의 정신건강 검진도 검사 자체보다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는 견해다. 위험군을 찾아내고도 상담이나 치료까지 장기간 기다리면 조기 검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첫 번째는 자살위험 신호를 발견한 뒤 실제 치료까지 빠르게 연결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검사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고위험 학생에게 당일 또는 수일 이내 전문평가를 제공하고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지 않도록 사례관리자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주변과 단절되거나 수면 습관이 급격히 바뀌고 죽음에 관한 말을 반복하는 등의 위험 신호를 살펴야 한다. 위기 징후가 나타나면 당사자에게 자살 생각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믿을 만한 어른과 전문기관에 연결해야 한다.
조철현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죽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직접 묻는 것이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묻지 않다 보니 자살을 놓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이어 "또래에게는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우정이 아니라, 믿을 만한 어른에게 연결하는 것이 친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가게 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사후관리를 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자살 재시도자 비율은 40%가량이며, 관리를 받더라도 지역사회에서 관리받는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자살 시도자들을 관리하고 궁극적으로 큰 시각에서 '살기 좋은, 희망 있는 사회'를 만드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고위험군 핀셋 정책 지원, 자살자 심리부검 확대, 구체적 통계 체계 확보, 우울증 등 신약 급여 도입 등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 작년 응급실 간 자살 시도자 중 49.7%만 사후관리 받아…40% 자살 재시도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기준 지난해 응급실에 방문한 자살 시도자 수는 2만8996명이다. 2년 전 3만9404명보다 26.4% 감소했다. 그러나 이 중 국가가 심리상담, 치료비 등을 지원하는 사후관리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친다. 지난해 사후관리 비율은 49.7%로 2023년 48.7%에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응급실에 방문하지 않은 자살 시도자 수를 감안하면 자살 시도자 관리 비율은 더 떨어진다.
'자살 시도자 응급의료체계 모형 개발 연구'(2019년)에 따르면 사후관리를 받지 않은 경우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12.5%로 관리 받은 사람 4.6% 대비 높았다. 이에 모든 시도자의 사후관리가 필요하지만 아직 안 되는 셈이다.
응급의료기관 내원자 중 자살 재시도자 비율은 확인된 것만 40% 안팎이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사후관리 서비스 참여 응급실에 방문한 자살 시도자 2만2868명 중 37.3%인 8541명이 자살 재시도자였다. 51.0%는 자살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었고, 나머지 11.7%는 재시도 여부가 파악되지 않았다. 자살을 한 번 시도한 사람은 일반인 대비 자살 위험이 25배 이상 높다.
일부 시도자는 정부의 자살 사후관리 서비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해 사망·전원으로 인한 중복을 제외한 자살 시도자 2만1406명 중 32.7%가 서비스에 동의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됐다.
병원에서 사후관리 서비스를 받더라도 이후 지역사회로 연계되는 비율은 40% 안팎에 불과했다. 지난해의 경우 병원 사후관리를 4회 이상 수행한 자살 시도자 중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에 최종 연계된 사람 수는 4844명으로 44.0%였다.
◆ "자살 사후관리 제대로…우울증 신약 급여, 심리부검 권한 확대 등 필요"
남 의원은 "자살 시도자는 재시도 위험이 높아 응급실에서부터 적극적인 개입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사후관리 사업을 더 확대하고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까지 끊김 없이 연계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 사망자의 죽음 관련 원인을 분석하는 심리부검 역시 폭넓게 실시해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예방 정책에 반영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자살 재시도 위험성이 높은 분들은 나라에서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는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적으로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위험군에 한해 우울증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지원도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 교수는 "우울증이 심하고 자살충동이 있을 때 코에 스프레이처럼 뿌려 빨리 치료하는 신약이 있지만 약 값이 한 달에 백만원 단위로 들어 사실상 쓸 수 없다"며 "다른 우울증 약들은 효과가 느리고 약 먹고 좋아진다고 해도 보통 한 달 뒤"라고 언급했다. 이어 "자살위험이 높은 환자에 한해서라도 우울증 신약의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의 체계적 채무 유예 체계, 구체적 통계 확보, 심리부검 분석관 권한 확대 등도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국민생명안전위원회 부위원장,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영국에 자살 위기자의 채무를 유예하는 '브리딩 스페이스' 제도가 있는데 본인이 직접 신청한 경우는 3%가 안 되고, 20%가 가족, 60%는 국가 기관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직원이 대신 신청한다"며 "도덕적 해이가 없는 선에서 우리도 이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 회장은 또 "핀란드는 자살 사망자 대상 심리부검 전수조사로 자살률을 낮췄는데, 우리는 전수조사가 쉽지 않지만 분석관이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게 권한을 확대해줘야 한다"며 "영국에선 청소년 사망자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조사로 결정적 자살 원인을 파악했는데 이런 권한이 실질적 분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자살 통계가 매우 늦게 나오는 데다 몇 명이 시도해 어떻게 됐는지 통계가 없다"며 "세분화된 통계를 확보하고, 좀 빨리 나오는 경찰 집계 잠정치도 구체적으로 공개해 원인에 따른 선제적 자살 대책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열심히 살면 도와주는' 희망 사회 만들어야…구조적 대안도 필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게 아닌, 열심히 살수록 더 지원해주는 희망이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지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본부장은 "민생 지원금 같은 정책이 자살 감소에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이런 건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주면 좋겠다"며 "최근 정부가 일부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했을 때도 열심히 빚을 갚았던 자영업자들이 좌절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러 연체하고 파산 신청하는 분들이 있어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고 말하는 자영업자도 있다"며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하는 '선순환 복지'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SNS, 연예인들의 사생활 공개, 사는 지역과 대학 등의 계급화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는 것들이 많다"며 "자살을 막는 정책뿐 아니라 국민이 살고 싶다고 느끼는 사회, 내일을 기대하며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명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 대책이 자살의 순간에 가까이 가 있는 분들에 대한 조치 위주"라며 "노동, 주거, 교육 등 구조적 분야에서 안정적인 것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다슬 인제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정부가 단순히 정신건강, 경제적으로 위험한 사람 위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다양한 삶의 궤적에 대한 조건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년, 20~30대 여성은 자살률 증가가 두드러지는 인구집단인데 이에 대한 이해, 근본적 원인 분석으로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설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