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에 이어 제넨텍과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번 거래는 약 3조5000억원 규모로 국내 단일 후보물질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계약 배경에는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약품은 로슈 자회사 제넨텍과 비만 및 제2형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관련 대사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 'HM17321(UCN2 유사체)'의 독점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제넨텍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7321의 개발, 제조와 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한다.
한미약품은 제넨텍으로부터 1억9000만달러(약 2850억원)의 선급금을 수령한다. 총 계약 규모는 향후 임상 개발, 규제 승인, 상업화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포함해 최대 약 23억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이른다. 또 한미약품은 제품 출시 이후 별도의 로열티(경상기술료)를 수취할 예정이다.
HM17321은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비인크레틴 계열 UCN2 (Urocortin-2) 유사체다. 체중 감량과 근육 보존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계열 내 최초 신약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 5월 일라이릴리와도 단장증후군 치료 신약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제조·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규모는 12억6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다.
두 건 모두 한미약품의 연구개발(R&D) 역량과 한미사이언스의 사업개발(BD) 역량이 결합해 만들어낸 성과라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 출범 이후 김 부회장이 주도해 온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본격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고 본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기획전략본부'와 '이노베이션본부'를 신설하고 그룹 차원의 사업개발과 글로벌 협업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김 부회장은 직접 이노베이션본부장을 겸직하며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진두지휘해 왔다.
김 부회장의 가장 큰 강점은 제약과 투자를 모두 경험한 보기 드문 경력이다. 그는 1990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경영기획, 기업설명(IR), 글로벌전략, 약품사업 부문 등을 거치며 30여년간 제약산업 전반을 경험했다. 이후 메리츠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ND(투자&개발) 본부를 이끌며 바이오 투자와 사업개발 조직을 이끌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김 부회장을 추천하며 "경영관리, 기획, 투자, M&A, 글로벌전략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한양행 재직 시절에는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기술수출과 글로벌 전략 업무를 수행했으며, 메리츠증권에서는 바이오 벤처 투자와 가치 발굴 업무를 주도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경험이 연구개발 자산의 가치와 사업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경쟁력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한미그룹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강점은 연구개발 자산이 가진 잠재 가치를 시장 언어로 해석해 글로벌 제약사와 연결하는 능력"이라며 "기술 자체뿐 아니라 사업성과 확장성을 함께 설계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 취임 이후 한미사이언스는 관리형 지주회사를 넘어 사업형 지주회사로 변화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구축과 외부 기술 발굴, 전략적 투자 확대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단순한 기술수출을 넘어 김 부회장이 주도해 온 한미그룹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성과로 보고 있다. 특히 릴리와 제넨텍이라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연이어 협력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연구개발 중심의 전통적 한미 모델에 사업개발과 투자 역량이 더해진 새로운 성장 모델이 본격적인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연구개발 조직과 사업개발 조직이 분리돼 있었다면, 현재 한미는 지주사가 사업개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딜 경쟁력이 강화된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