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안데스 산맥의 도시 우아라스는 잦은 홍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극지방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이 지역 팔카코차 호수의 물의 양은 불과 몇 십년동안 3400% 증가했다. 이 곳에 사는 사울 루시아노 이우야씨는 "집이 망가져도 홍수나 눈사태가 또 덮쳐올텐데, 차라리 집을 수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견디다 못해 2015년 독일 석탄회사 RWE를 고소했다. 우아라스의 잦은 홍수에는 이 석탄회사가 온실 가스를 너무 많이 배출한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남미 페루에서 일어난 홍수에 1만여km 떨어져 있는 독일 석탄회사가 법적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미 UCLA 법학전문대학원 앤 칼슨 교수는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온실 가스를 내뿜는 기업들을 상대로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최근 늘고 있다"며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는 하나의 법적 선례만 남겨도 정말 큰 변화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를 악물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야씨는 RWE에 지역 홍수 방지비용의 1%인 1만9000달러(약 2168만원)를 청구했다. 그는 RWE가 소유한 30기의 화력발전소가 연간 2억5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전세계 기후변화의 1%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아라스의 홍수 방지에도 1%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우야씨는 "소송을 걸었지만 큰 기대를 걸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지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건 그냥 세상에 대한 외침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우아씨의 이 같은 주장은 2017년 말 독일 지방법원 항소심에서 받아들여져 현재 입증단계에 있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들이 RWE의 생산활동과 우아라스의 홍수 발생빈도 간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중이다.
RWE 측은 이 같은 소송은 말도 안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RWE의 구이도 스테펜 대변인은 "만약 그런 소송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운전한 것도 소송 당할 수 있는 것이냐"면서 "그렇게 된다면 결국 모든 사람들과의 소송전쟁을 의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거센 반발에도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의 랄프 레겐바누 외무장관은 "우리나라에 실존적 위협을 가져다주는 전세계 석탄회사에 환경보호 비용을 이전하기 위해 국제법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7년 이후 미국에서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8개 도시와 6개 카운티, 1개 주에서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BP, 셰브론, 피바디 에너지 등의 화석연료 기업들이 줄줄이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실제 소송이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재판부가 애초에 특정 기업이 끼친 환경적 영향을 수치화할 수 없다고 여겨 소송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2008년 알래스카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기후변화 관련 소송을 기각하며 "특정 시점에 한 기업이 배출한 어떤 물질이 지구온난화에 끼친 영향을 추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클랜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가 지역 내 5개 정유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기각됐다. 이를 담당했던 윌리엄 알섭 판사는 "원고들이 제기한 위험은 매우 현실적이나 그러한 위험들은 전세계에 존재하고 원인도 전세계에 있다"면서 "이 문제는 지방법원 판사나 배심원이 해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규모로 다뤄져야 할 문제"라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이 같은 기후변화 소송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담배회사 상대 소송은 흡연으로 폐질환에 걸린 원고들이 꾸준히 제기해왔다. 초반에는 담배를 피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책임이지 담배회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결이 많았지만,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해로운 점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자 대세는 뒤바뀌었다. NYT는 "기후변화 소송 역시 온실가스 배출 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이들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