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체 경제투자액 중 10분의 1이 현재 북극 지역에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달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세계 무역과 국가 안보에 있어 북극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최근 북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손길을 뻗치는 곳은 비단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점점 녹고 항해의 어려움이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북극해 항로는 수에즈 운하나 희망봉 항로에 비해 거리가 40% 짧다. 북극 기온이 점점 높아지면서 얼음 없이 항해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자 북극해 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 항로가 됐다. 세계 교역량의 90%를 담당하는 해상 운송에 대대적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북극해 항로를 이용하려면 값비싼 쇄빙선을 동원해야 했기 때문에 해운회사엔 큰 부담이었다. 한 마디로 경제성이 없었던 것.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바다 얼음이 녹으면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지난해 북극해 항로를 통해 운반된 화물은 총 2000만t에 이른다. 러시아는 2025년까지 북극해 항로를 통해 8000만t의 화물이 운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과제"라며 "북극해 항로를 안전하고 상업적으로 만들어 이 목표를 실현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에 북극 접근 독점권을 부여하고 쇄빙선 주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등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러시아는 유엔 대륙붕 경계위원회에 북극해 중앙부에 있는 로모노소프 해령과 멘델레예프 해령의 주변 해역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해저 지형들이 자국 대륙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FT는 유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20년 여름까지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중국도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이용해 북극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북극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해외 주주다. LNG의 효율적인 수송을 위해선 북극해 항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도 북극해 항로 개척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은 지난해 '북극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일대일로 사업과 연계해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섬에 북극 연구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북극해 항로 개척을 위해서는 쇄빙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얼음이 녹은 해안을 항해할 때도 아직까지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쇄빙선이 따라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추진 쇄빙선 4척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은 "2035년까지 러시아가 핵 추진 쇄빙선 9척을 포함해 최소 13척의 쇄빙선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도 질세라 쇄빙선 조달에 나섰다. 미국은 이번 달 746만달러(약 86억4000만원)를 들여 20년만에 쇄빙선을 주문했다. 미 해안경비대 사령관인 칼 슐츠 제독은 "북극해 항로를 둘러싼 엄청난 경쟁 속에서 쇄빙선은 극지방에서 미국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미국의 국익을 가장 잘 대변하고 북극의 안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올 여름 새로운 북극 전략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러시아 화물탱크가 많이 건조되는 한국 해운업체들도 2013년부터 북극해 항로를 시범항해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북극해 항로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짧은 항로이자 대단한 상업적 잠재력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