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중국' 논란 WHO, 해체가 답? "오히려 권한 강화해야"

이창섭 기자
2022.03.11 18:24

[MT리포트] 팬데믹 2년, WHO 대해부⑤

[편집자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11일로 만 2년이 됐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4억5000만명, 사망자는 6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의 5% 넘게 코로나19에 감염된 셈이다. 역대 최악의 팬데믹 시대, 세계보건기구(WHO)의 현주소를 되짚어본다. 세계 공중보건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염병에 대응해야 할 이 조직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걸까.

"코로나19(COVID-19) 감염병 사태는 세계보건기구(WHO) 독립성·유연성, 민첩함과 관련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WHO의 현재 모델을 기반으로 수정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실패했다"

팬데믹 발생 이후 설립된 '전염병 대비·대응을 위한 독립 패널(The Independent Panel for Pandemic Preparedness and Response)이 지난해 5월 발표한 WHO 평가 중 일부다. 패널 평가대로 전 세계적 전염병 사태에서 WHO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친(親)중국 국제기구라는 비난을 받았고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WHO를 해체하고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오히려 WHO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 대응이 부실했던 이유는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기구 만들기보다 재정 구조 개선·국제 조약 신설·글로벌 헬스 투자 강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WHO는 힘없는 조직… 리더십 비판 맞지 않아"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WHO의 가장 큰 문제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WHO는 국제 보건 기구로서 회원국을 지원하는 구조로 돼 있다. 각 회원국이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WHO는 인력·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다. 회원국을 도와주고 싶어도 내정간섭 등 이유로 해당 국가가 거부하면 이마저도 어렵다. WHO가 내리는 지침을 모든 나라들이 따를 만큼 권위가 있지도 않다.

2005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중후군) 사태 이후 WHO는 국제보건규칙(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 IHR)이라는 규약을 만들었다. IHR은 공중보건을 이유로 각 나라가 선박·비행기·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물자와 인력 이동 금지가 약소국 보건 대응을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전 세계 나라들은 문을 걸어 잠갔다. 국경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WHO 권고는 소용이 없었다.

국제보건을 전공한 차지호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WHO가 팬데믹 대응을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국제기구의 현재 파워나 역할을 오히려 과대평가한 것"이라며 "힘이 없는 리더십을 만들어 놓고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건 조금 맞지 않다"고 말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중후군) 사태 당시 WHO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을 맡았던 이종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UN(국제연합)은 문제 해결 시 필요하면 평화유지군이라도 파견할 수 있지만 WHO는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손발이 없다"며 "보건 문제 발생 시 의사·약품을 보내야 하는데 WHO가 그럴 돈도 없고, 보낼 사람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제 보건 문제는 단순 보건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령 국경 폐쇄는 각 나라의 사회·정치·경제 문제랑 연관돼 있다. 보건 기구인 WHO가 각 나라 정치에 영향을 미칠 만한 조직은 아니다"라고 했다.

의무분담금 높여야… 독립성 제고? 전문가 의견은 반반
[제네바=AP/뉴시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2022년은 코로나19를 끝내는 해가 돼야 한다"라며 연말 모임을 자제하고 팬데믹 종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1.12.21.

WHO의 제대로 된 활동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회원국 분담금을 높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의무분담금 확대가 WHO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렸다.

현재 WHO는 각 회원국이 내는 20% 의무분담금과 80%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80% 기부금마저도 기부자가 원하는 프로젝트에 돈이 가는 구조다.

이 교수는 "독립성을 높이려면 WHO 직원이 온전한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월급 80%를 각 국가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받는 꼴"이라며 "독립성 제고를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돈을 자발적 기부금이 아닌 의무 분담금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실제로 전 세계를 다루는 WHO 직원이 8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직원 한 명이 여러 분야를 담당하는 게 현실"이라며 "분담금을 늘려서 정규 직원을 더 많이 뽑아 WHO 역량을 강화해 팬데믹뿐만 아니라 보건 전반 대응 기능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각국의 분담금 확대 해석을 WHO 독립성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 왜곡이 심한 것 같다"며 "국가 분담금을 올리면 더 특정 국가 편향으로 갈 수 있어 독립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WHO 해체? "100년간 쌓아온 지적 노력 다 없애는 것"

전문가들은 WHO를 해체하고 새로운 국제 보건 기구를 만들자는 방안에는 공통적으로 반대했다.

이 교수는 "WHO는 100년 이상 인류의 지혜와 지적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기구"라며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이런 노력들을 다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IHR을 대체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국제조약 신설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WHO는 강제 집행 권한이 없어 팬데믹 당시 특정 국가를 상대로 자료를 받거나,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이미 팬데믹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논의는 진행 중이다. WHO는 지난해 12월 1일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팬데믹 발생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국제 협약이나 조약 혹은 국제적 틀'(팬데믹 조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WHO가 국가에 직접 개입이 어렵기 때문에 이런 장치가 있으면 팬데믹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장치가 없어서 못한 게 많다"고 말했다.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각 회원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차지호 교수는 "팬데믹이 준 교훈은 굉장히 먼 나라에서 발생한 보건 위기가 우리의 보건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글로벌 헬스 기여도가 높아져야 한다. 코로나19로 입은 피해액의 5~10%만 선제적으로 투자했어도 팬데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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