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도한 반도체 핵심 소재 한국 수출 규제는 사실상 실패했으며, 일본 통상정책의 흑역사로 남았다는 현지 언론들의 비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은 타격을 거의 입지 않은 반면 일본 기업들의 손해가 컸다는 분석을 내놨다.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2018~2019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당시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강행한 수출 규제 조치가 어떤 역효과를 초래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 2019년 7월부터 △감광액(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품목 3종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 기업이 이들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정부에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고 이 조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강제 징용 소송에 대응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보복이다.
당시 한국은 비상에 걸렸다. 최대 수출 산업인 반도체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데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반도체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지 못하고, 일본에만 의존해 온 구조에 대한 자책도 쏟아냈다.
하지만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현재 양국의 상황을 짚어보니 아베 전 정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에 꼭 필요한 소재 등 100개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2019년 30.9%에서 2021년 24.9%로 낮아졌다.
특히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3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 수입액은 2019년 3630만달러(450억원)에서 1250만달러(155억원)으로 66% 줄었다. 포토레지스트의 대일 의존도는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고, 플루오린 플리이미드는 일본 수입을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이 정부 주도하에 아베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탈일본'에 성공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진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로 위기를 맞았지만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극복해 낸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의 기회로 삼았고,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 전 정부의 수출 규제로 오히려 일본이 피해를 봤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그동안 선진기술 유출 경계 등으로 현지 생산을 꺼렸던 일본 반도체 부품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해 현지 생산을 시작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일본 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부추기는 반 경제안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제3국을 경유해 부품 거래를 시작한 것은 양국의 상호 경제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 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일본의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실패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아베 전 정부는 "500억엔(4800억원) 수준의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을 막아 15조엔(145조4500억원) 규모의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높은 제재수단"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제로 한국이 받은 타격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도의적인 우위성을 준 것은 일본 통상정책의 흑역사인 만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닛케이는 강하게 비판했다. 원래 일본에는 '경제적 수단으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사례에서 확인이 된 것처럼 경제적 수단으로 전략적 목표를 이루는 '이코노믹 스테이트 크래프트(경제적 외교술)'는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으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닛케이는 "자유무역체제야 말로 일본의 핵심적 이익"이라며 "경제안전보장에 있어서도 전수방위(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만 반격한다는 일본의 국방 원칙)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